청와대와 계상정거도

정유천(블루스기타리스트)

이재명 정부가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돌이킬 준비가 한창인 듯하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 10일 용산으로 이전하였으니 불과 3년 2개월만의 원상 복귀다.

풍수지리의 역사적 기원은 고대 중국이며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고 본다. 풍수는 본디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철학적 기반에서 나왔다. 하지만 우리에겐 주로 집터 선택이나 사찰 또는 묘 자리를 정할 때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와 왕릉 같은 국가의 핵심 시설을 정할 때, 풍수지리는 단순히 미신이 아닌 국가 운영철학의 일부였다. 정치적 안정과 후대의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이 투영된 지리사상이었다.

1394년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918~1392)의 수도 개경(지금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풍수지리적 명당이었으며, 특히 무학대사와 정도전 등이 강력히 조언하였기 때문이다, 한양은 북쪽에 산(북악산), 남쪽에 물(한강), 좌청룡·우백호 구조가 잘 갖춰진 ‘이상적인 길지(吉地)’로 평가됐다. 이 결정은 조선의 국운과 장기적 안정을 위한 전략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청와대 역시 이러한 풍수의 원리에 따라 북악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주산(主山)인 북악산 동쪽(청와대 기준 좌측)에는 낙산이 있고, 서쪽(우측)에는 인왕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다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고 명당수라 할 수 있는 청계천과 한강이 있어 조선시대부터 천하의 명당으로 평가 받는다. ‘청와대’라는 명칭이 공식화한 것은 1948년 이후지만, 본래 경복궁의 후원에 해당하며 풍수적으로 임금의 배후를 든든하게 해주는 위치로 해석된다.

전임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를 사용하지 않겠다하여 용산으로 막대한 국고와 행정력을 낭비해가며 집무실을 이전을 강행하였다. 일부에서는 법사나 무속인의 조언에 따른 결정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어 퇴진하는 운명을 맞았다. 대통령이란 직이 단순히 좋은 터에 거처와 집무실을 마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뽑아준 국민의 뜻을 잘 헤아리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만과 무능함으로 일관하며 나락의 길을 자초했다.

풍수와 역학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이지만 일부에 의해 악용되거나 호도됨으로써 다 싸잡아 미신으로 치부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세계 4대 성인중 한 사람인 공자가 가죽 끈을 세 번이나 갈아매며(위편삼절, 韋編三絕) 봤던 책이 주역이라고 전한다. 주역은 사서오경중 하나로 약 3,000년 전 중국 은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동양 철학과 사상의 뿌리라 할 만큼 방대한 역사와 영향력을 가진 책이다. 단순히 점(占)을 보는 책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철학서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우리나라 풍수지리에서 가장 좋은 터는 겸재 정선이 1746년에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에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던 안동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 산수를 묘사한 것으로, 자세히 보면 서당 안에서 이황이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계상정거도는 2007년부터 천원 권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 그림이 궁금하다면 지금 주머니에 있는 천원 권 지폐의 뒷면을 보면 된다.

청와대는 그 자체로 우리 역사, 철학, 자연관이 녹아 있는 공간이며, 풍수적으로도 오랜 세월 명당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권좌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빛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며 새로운 정부는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 성공한 정부로 평가 받기를 바란다.

About THE BUPYEONG WEEKL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