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반환되는 부평의 캠프마켓은 忠正公 민영환의 땅이었다. 민영환의 식객이었던 친일파 정미칠적의 한 명인 송병준이 강탈하고 이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100년간 이루어진다. 송병준의 후손들이 ‘조상 땅 찾기’에 제기된 소송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2005)” 에 의해 거의 패소하거나 기각된다. 을사늑약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친일파들은 일본으로 부터 은사공채와 자작(子爵)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7] 부평의 노포 2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40~50년 이상을 부평시장과 함께 한 노포들… 짐자전거 한 대, 나무 사과 박스 2~3개와 그리고 몸이 사업 밑천이었죠! 시장 골목진 곳에 좌판을 깔고 50~70여 년 넘게, 더위와 추위속에서 부평사람들과 함께 부평시장을 지켜왔고 부평을 만든 곳입니다.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6] 29년 만에 완료된 소화토지 구획정리 사업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1년 10월 28일 조선총독부가 인천부 ‘소화토지구획정리사업 실시계획’을 승인 하면서 부평역 앞 42만 7,000평에 대한 1단계 구획정리가 시작되어 1943년까지 공사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인력 및 자재 부족으로 공사는 늦어지며 광복을 맞이하고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등에 밀려 29년이 지난 1970년에야 1단계 토지구획정리가 완료되었다. ※부평 조병창은 1941년 5월 5일 개창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5] 미군 제1빵공장은 산곡중학교 자리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영자신문은 1958년 10월 28일자 기사이다. 첫번째 흑백사진은 1952년 전후 사진으로 파란 화살표가 산곡중학교 자리이고 굴뚝이 있는 건물이 당시 빵공장이고 1973년 애스컴시티가 해체될 때까지 있었다. 현재 빵공장부지는 1974년도에 준공되고 최근까지 운영되었던 제3빵공장 내부이다. 인근에는 비행장이 있었고, 인천일본육군조병창의 기능공양성소 건물이 보인다.(일부 철거中) 오른쪽은 산곡동 영단주택이다. 지금은 평택 캠프 험프리에서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4] Memories of My Ghost Brother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8년 전, 엄마의 나라를 찾아 부평을 방문한 입양아들이 있었다. 많은 원망이 있겠지만, 위로 말로는 부족해서 아무말 없이 옆에 만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 1950~70년대 미군기지촌을 배경으로 혼혈 정체성, 입양, 형제들과의 관계 등 ‘유령’ 같은 과거가 현재를 뒤흔드는 주제를 다루는 하인즈 인수 펜클의 자전적 소설이다. 나라에는 힘이 있어야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3] 부평출장소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14년 富川郡이 될 때, 부평지역은 富川郡 富內面 소속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고, 1940년 조선의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인천부를 2차례에 걸쳐 확장, 부내면이 인천에 편입된다. 이 때 지역명도 일본식의 정명(町名)으로 개명된다. <사진 설명> 富平出張所가 계산동에 신축한 부내면 사무소를 폐쇄하고 白馬町(산곡동) 1번지에 부평 조병창 확장공사의 하도급업자 다마보구미(玉藻組)의 현장 사무소를 빌려 세 동에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2] 부평의 노포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50년 이상을 부평시장과 함께 한 노포들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1] 미군 손지도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인천항에 상륙한다. 경인로를 통해 인천-부평-서울로 진출한다. 이를 전후하여 자체적으로 지도를 만들기 전 직접 손지도를 그려 초기에 지역간 이동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SALT FLATS : 주안염전 – VISIBLE FROM SEA : 계양산 – PROPOSED AIR PORT : 비행장 예정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0] 지절방[志節坊]-디젤사택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중ㆍ고등학교 자리에 일제강점기時 (1943년경) 디젤자동차 부평공장이 세워지고, 1940년경 세워진 국산자동차 부평공장은 산곡동 부평 전신 전화국 일대이다. 수도펌프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국선이 지나간 곳으로 장고개로 수도물을 넘기기 위해 모터펌프의 힘을 이용. (부평동초등학교 옆, 하얀 건물) 공보관은 현 보건소 자리에 있었고, 북구청이 신축되어 들어서고 공보관은 1969년 부평4동 새시장에 새로 지어져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9] 나무서리=목상동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천자문에 ‘노결위상(露結爲霜)’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된다. 즉 이슬이 내리고 머잖아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온다. 계양산 북사면에 지금의 목상동을 ‘나무서리’라 불렀다. 북사면 무성한 나무 사이 마을로 일조권이 적어 나무에 서리가 걷힐 사이가 없어 ‘나무와서리(木霜)의 마을’이라 했다. 아랫마을을 ‘눌지마을’로 나무소리(수소-樹蘇)마을이 변음되어 ‘나무서리’ 로 불렀다. 황어향을 다스리던 호족 이희목이 고려왕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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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