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산곡동 근로자 주택 (영단주택) 서쪽에 인천한일초등학교가 위치한 산골짜기를 양성골이라고 불렀다. 골짜기의 모양이 마치 성을 쌓아 놓은 모양 이어서 성안골이라고 하였다가 양성골로 바뀌었다. 서구 가좌동으로 이어진 원적로는 1969년 착공해 1972년에 개통했다. 기존에 통행하여 다니던 예전 길이었던 장고개(場峴)에 일본육군조병창의 기능공양성소가 들어오고 수용되면서 장고개길은 폐쇄되고 십정동으로 우회하거나, 사진에 보이는 한일초등학교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7] 원적산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원적산(元積山)은 남으로는 장고개 (場峴)와 북으로는 안아지고개(九十峴) 사이의 높이 165m 산으로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은 신경준이 정리한 “산경표” (1700년 중엽)에 원적(元積)으로 명시되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원적산 (元積山ㆍ元寂山)은 고지도에 실려 있다. 오래 된 산이름인데 명분도 없이 바꾸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종때 김안로에 의한 운하가 2번의 실패로 원(怨)이 쌓여 원적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6] 뫼끝말ㆍ장끝말 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마장면 (지금의 효성ㆍ청천ㆍ산곡리 = 馬場面)과 석곶면 (石串面)이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 (元積山)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동산을 이루고 그 뫼뿌리 끝 밑에 (산곡동 82) 마을이 생기니 뫼(山)의 끝에 있는 마을이라서 ‘뫼끝말’ 이라 불렀고, 산골짜기의 마을이라 ‘산곡리 (山谷里)’라 하였다. ‘뫼끝말’을 한때는 ‘뫼꽃말’로 불러왔으나 뫼꽃(=山花)과는 전혀 무관하나, 마을 뒷산(元積山)에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5] 제10반공포로수용소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영공원에 한국전쟁中인 1953~54년, 제10포로수용소(PW)에 1,486 명의 반공포로가 있었고, 아직도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1953.6.18. 이승만 정부가 남한에 수용 중이던 반공 포로를 일괄 석방한 사건이 발생. 이 과정에서 미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다. 전국반공포로 35,698명중 석방 포로 27,389명 탈출 (미탈출 7,236명), 사망 64명ㆍ부상 80명. 이중 부평에 있던 제10반공포로수용소 에서는 47명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4] 한국전쟁 이후 방공포대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역 옆 대한극장 자리는 부개산이 흘러내려 온 낮은 언덕이었다. 인천상륙작전 후, 1950.9.17. 오전 부평전투가 있던 곳으로 전쟁 후, 방공포 부대가 주둔하였다. 1960년대 초반경, 언덕의 흙을 깍아 저지대인 부평시장R를 매립하였지만 방공포대가 있던 언덕 밑 기반암이 대한극장 주차장에 아직도 남아 있다. 계양산 정상과 만월산 정상에 방공포대 자리에는 흔적만 남아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3] 우리가 몰랐던 구현산 포대 2
빅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894년 일본군 대위 다나까를 비롯 3명 장교를 당시 제물포에 파견, 간첩들이 하는 정탐지도를 만들게 했다. 한양까지 군대이동과 포대 설치를 위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7시간이면 한양으로 갈 수 있는 3방면의 길을 기록하고 있다. 맑은 날이면 인천앞 바다가 훤히 보이는 구현산(현 부개산)에 포대를 설치하고 인근 봉우리에는 숙영지 흔적이 보인다.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2] 우리가 몰랐던 방공포대 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 부개산을 경찰학교 뒷산ㆍ금마산으로 불렀고 팔각정엔 자리에는 넓직한 운동장과 근처에 약수터가 많아 놀이터로서 적합했다. 인천가족공원내에 있는 부개산 정상에 포대 흔적이 2개가 남아 있다. 일본군이 미군 폭격기에 맞설 방공부대자리이다. 부평조병창이 있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말기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자료 ‘대동아전쟁 17방면군 축성시설배치도’를 바탕으로 지도위에 필사해보니 ‘야전진지’ ㆍ ‘병기격납동굴500 m2’ (함봉산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71] 부평의 고개길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사람이 모여 살게되면 마을이 되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것이 길(路)이지요. 한남정맥 분지로 둘러쌓인 부평에는 수많은 고개가 있어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약 1,000여 년 이상된 길(路)만 소개하겠다. 예전에는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에 마을이 생기고 단지 말ㆍ소ㆍ 사람들이 이용하며 길이되었지요! 예전에는 자주 볼 수 있었던 돌무더기 서낭당이나 상여집 등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0] 부평ㆍ십정ㆍ청천농장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에는 한센인들이 운영하는 농장 3곳이 있었다. 한하운 시인이 1949년12월30일,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수도권 일대 한센인들 70여 명과 함께 인천가족공원 옆 골짜기로 들어와 정착,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치료 후, 음성 판정을 받아 완치된 그들은 농장 운영(닭ㆍ돼지ㆍ소 등을 사육)을 하였다. 문둥병 또는 나병환자라 사회적 편견에 의한 차별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9] 녹청자 도요지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인천시 부평구ㆍ서구ㆍ계양구ㆍ부천시 일원은 오래전부터 같은 행정구역으로 한 동네였다. 지금의 서구는 조선시대말까지만 해도 승학산 북쪽을 모월곶면, 남쪽을 석곶면으로 하는 부평도호부 소속의 행정구역으로 부평의 15개면中 가장 인구가 많은 큰 동네였다. 부평의 고대 邑治인 古縣里(=고련이, 현 검암동 상동마을 인근)가 있어, 부평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으로 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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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