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3 1:45:08 오후

박명식, 부평지역사

[박명식, 부평지역사 22] 일본육군조병창과 캠프마켓 이야기(프롤로그) – 기억의 흔적

부평 한가운데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마켓(Camp Market)에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30 여 년 전 캠프마켓 부지와 주변 땅은 민태호와 양자 민영환 소유였다. 을사늑약에 격분한 민영환이 1905년에 자결하자, 민영환의 땅은 우여곡절을 거쳐 친일파 일진회의 회장이며 정미칠적의 한 명인 송병준에게 넘어간다.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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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21] 마장(馬場) 이야기(4).. “천마와 아기장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과 공간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로 살아 움직이는 도시에 속해 있다. 공기 좋고 물 맑았던 동네는 산업화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구이동을 강요하고 있다. 일제는 자국 내 부족한 식량을 보충코자 1910~192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산미증산계획 일환으로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조선농민경제의 파탄을 초래하였다. 부평지역 소작농민들 저항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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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20] 마장(馬場) 이야기(3).. ‘눈다리개’

문화도시는 한순간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을 근거로 2021년 1월 6일 부평의 법정 문화도시 지정은 향후 10년간 지역 정체성을 차별화 할 수 좋은 계기로 부평구민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가 부평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이 지역에서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코자 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여기의 전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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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9] 마장(馬場) 이야기(2) ‘신이 거닐던 뜰…신로야(神路野)’

부평구가 2021년 문화도시로 지정 되었습니다. 앞으로 부평 문화다움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떠한 색의 옷을 입어야 할 지 고민하고 부평 성장 동력으로 문화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문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명(地名)속에 담겨 있는 내 고장의 귀중한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 할 때가 되었고, 이 땅의 미래 세대 청소년들에게 내 고장 바로알기와 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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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9] 부평 지명 이야기(4) – ‘마장(馬場), 그 많던 말들은 어디로…’

‘백마장’이라 불리어 온 산곡동은 원래 19세기 조선말에 부평군 마장면 산곡리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에 부⋅군⋅면(府⋅郡⋅面)이 통폐합 때 부천군 부내면 산곡리로 되었다. 그 후 일본의 인천육군조병창이 부평에 조성되면서 1940년 4월 1일 인천부 제2차 구역확장으로 부내면 전부가 인천부에 편입되자 당시 인천부윤(仁川府尹)나가이 데라오(永井照雄)는 인천 전지역의 각 리(里)⋅동(洞)을 일본식 이름(町名)으로 모두 고쳤다. 이때 산곡리(山谷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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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8] 부평 지명 이야기(3) – “도항꼬지(道航串)” 알고 계신가요?

현재 부평구 삼산동 농수산물시장 인근에 도항꼬지(道航串)가 있었다. 1923년 이전에 농선(農船)이 굴포천과 한강을 통해 서울 마포까지 운행하였다. 부평⋅김포지역에서 농민들은 농선을 이용하여 밀물 때는 수확물을 서울 소비 시장으로 수송하고 썰물 때는 도성에서 수거한 분뇨를 채소밭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재래식 거름의 대표적 재료인 똥오줌은 한강을 통해 서울에 채소 따위를 싣고 와서 부려놓고는 서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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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7] 부평 지명 이야기(2) – ‘원통이고개(元通峴)’

현 부평삼거리에서 간석오거리에 이르는 원통이고개에는 거대한 운하 건설 역사가 남아있다.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실은 배가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강화 손돌목에서 침몰하는 일이 잦았다. 고려 고종 때 최충헌 아들 최이(崔怡)가 운하를 뚫어 조운로로 이용하고자 구상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조선 중종 때 권신 김안로는 부평벌을 가로질러 한강과 인천 앞바다를 잇는 뱃길 운하 공사를 시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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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6] 부평 지명 이야기(1) – 땅 이름에는 역사가 있다

지명(地名)은 본래 오랜 역사와 함께 우리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 골짜기, 하천, 여울, 들, 우물, 나무, 돌, 전설 등 지형지물(地形地物)의 생김새와 물체에 따라 땅 이름이 지어지고 역사의 변천에 따라 바뀌어 왔다. 여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살아온 지난날의 생활상을 담은 모습과 지역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땅이름이 바뀐 이유는 역사적 사건, 문화의 변천, 행정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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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5] ‘캠프마켓 이야기’ (8) – 김포선 철길은 사라졌다

부평과 부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최근 경기도였던 시절까지 한 동네였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경기도 부천시로 나뉘지만 예전에는 같이 농사짓고 한 우물을 먹던 농경문화의 한 뿌리를 가진다. 오늘 이야기는 부평 캠프마켓을 벗어나서 인근 지역 미군부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굴포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서운교를 지나 부천체육관과 약대공원 앞을 지나던 김포선 기찻길이 있었다. 김포선 철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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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부평지역사 14] ‘캠프마켓 이야기’ (7) – 전쟁의 상흔 ‘제10반공포로수용소’

한국전쟁포로 수용소는 인천에 3개가 있었다.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월미도와 인천구치소 자리에 있던 인천소년형무소, 그리고 부영공원에 제10반공포로수용소에 산재해 운영됐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는 연합군의 폭격 등으로 인천항과 신사(인천여상 자리에 위치)를 보호할 목적으로 미국군, 영국군을 포함한 영연방 연합군 포로들을 인천 중구 신광초등학교 자리에 전쟁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주로 항구도시인 인천, 부산, 흥남과 서울에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운영되었으며, 인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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