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平 文化 이야기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13] 자동차산업과 부평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55년, 미군 지프 부품을 활용한 시발(始發)자동차가 출시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평에는 일본의 ‘국산자동차’가 위치) 동경제강이 있던 자리에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지금의 부평구 청천동에 문을 열었다. 당시 일본 닛산(주)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1965~72년, ‘신진자동차공업(주)(주요 생산차-코로나, 크라운)이 외국 회사와 합자하여 인수한다. 새한자동차(1976~83년-제미니,맵시)는 고급승용차와 버스ㆍ트럭 등을 생산한다. 대우자동차는 (1983~2002년 -르망, 마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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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12] 초대 받지 못한 시인1 – 한하운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9년 12월 30일 한하운(본명 泰永)은 국가정책에 따라 강원도와 경기도 수원천변(세류동 하천부락)에서 함께 거주하던 한센인들을 이끌고 새 정착지인 부평 만월산 아래 한센인 요양소인 ‘성계원’을 설립하고 이주. 당시 ‘癩詩人 한하운시초 (1949년)’를 발표한 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상황. 그는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 일본 成蹊高 유학, 북경대 농학원 출신으로 이를 바탕으로 양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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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10] 부평구의 학교 이야기 1

빅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현 부평구의 1940~50년대 학교는 인천소화동공립심상소학교 (개교:1940-부평동초등학교), 소화고등여학교 (개교:1940-박문여고 전신), 인천소화서공립국민학교 (개교:1941-부평서초등학교) 3개의 학교가 있었다. 부평동초의 분교로 부개초 (1952)와 부평서초의 분교로 산곡초(1953)와 부평남초(1962)가 현 위치에 건립된다. 그나마 민족자본가 石溪 張錫佑가 세운 박문여고는 1956년 송림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국립경찰전문학교가 자리한다. 당시 부평에는 중등과정의 학교가 없어 서울ㆍ인천으로 통학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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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04] 클럽 아카닥(Acadac)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5년 9월 8일 인천항을 통해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은 1945년 9월 16일 인천일본육군조병창이 있던 부평에 애스컴 시티(Ascom City)의 군 보급기지를 조성한다. 1950~60년대 부평에는 영내·외 클럽 50여 개가 있었고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들었다. 1948년 3월 12일 신촌에 영외클럽인 아카닥(Acadac)이 생긴다. 아카닥은 19세기 미국의 거장 Stephen Foster이 작곡한 경쾌한 민요 Camp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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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01] 원통이고개와 부평전투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50.9.15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천해안 교두보를 확보한 미해병 제1사단은 9월16일 한강으로 진격을 개시. 미제5해병연대는 김포비 행장, 미제1해병대는 영등포가 공격목표. 인천상륙 3일째인 9월 17일 새벽6시 경 부평 경인로 원통이고개에 매복한 5연대 2대대는 인천쪽으로 역습을 하기 위해 접근하던 인민군 전차6대(T-34 전부 피격)와 함께 지나던 보전합동부대와의 기습전투로 약 250명의 적보병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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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8] 원적로 성안골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산곡동 근로자 주택 (영단주택) 서쪽에 인천한일초등학교가 위치한 산골짜기를 양성골이라고 불렀다. 골짜기의 모양이 마치 성을 쌓아 놓은 모양 이어서 성안골이라고 하였다가 양성골로 바뀌었다. 서구 가좌동으로 이어진 원적로는 1969년 착공해 1972년에 개통했다. 기존에 통행하여 다니던 예전 길이었던 장고개(場峴)에 일본육군조병창의 기능공양성소가 들어오고 수용되면서 장고개길은 폐쇄되고 십정동으로 우회하거나, 사진에 보이는 한일초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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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7] 원적산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원적산(元積山)은 남으로는 장고개 (場峴)와 북으로는 안아지고개(九十峴) 사이의 높이 165m 산으로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은 신경준이 정리한 “산경표” (1700년 중엽)에 원적(元積)으로 명시되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원적산 (元積山ㆍ元寂山)은 고지도에 실려 있다. 오래 된 산이름인데 명분도 없이 바꾸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종때 김안로에 의한 운하가 2번의 실패로 원(怨)이 쌓여 원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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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6] 뫼끝말ㆍ장끝말 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마장면 (지금의 효성ㆍ청천ㆍ산곡리 = 馬場面)과 석곶면 (石串面)이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 (元積山)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동산을 이루고 그 뫼뿌리 끝 밑에 (산곡동 82) 마을이 생기니 뫼(山)의 끝에 있는 마을이라서 ‘뫼끝말’ 이라 불렀고, 산골짜기의 마을이라 ‘산곡리 (山谷里)’라 하였다. ‘뫼끝말’을 한때는 ‘뫼꽃말’로 불러왔으나 뫼꽃(=山花)과는 전혀 무관하나, 마을 뒷산(元積山)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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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5] 제10반공포로수용소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영공원에 한국전쟁中인 1953~54년, 제10포로수용소(PW)에 1,486 명의 반공포로가 있었고, 아직도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1953.6.18. 이승만 정부가 남한에 수용 중이던 반공 포로를 일괄 석방한 사건이 발생. 이 과정에서 미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다. 전국반공포로 35,698명중 석방 포로 27,389명 탈출 (미탈출 7,236명), 사망 64명ㆍ부상 80명. 이중 부평에 있던 제10반공포로수용소 에서는 47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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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4] 한국전쟁 이후 방공포대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역 옆 대한극장 자리는 부개산이 흘러내려 온 낮은 언덕이었다. 인천상륙작전 후, 1950.9.17. 오전 부평전투가 있던 곳으로 전쟁 후, 방공포 부대가 주둔하였다. 1960년대 초반경, 언덕의 흙을 깍아 저지대인 부평시장R를 매립하였지만 방공포대가 있던 언덕 밑 기반암이 대한극장 주차장에 아직도 남아 있다. 계양산 정상과 만월산 정상에 방공포대 자리에는 흔적만 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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