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耳目口心書 4′ 육천 원 삼계탕

손택수 시인(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나의 신대륙 발견
버스로 서너 코스 구간은 그냥 걸어다니는 습관을 들였다. 어지간한 길은 걸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저 반복에 지나지 않던 데면데면한 풍경들이 새뜻하게 다가온다. 몇 해째 그저 통과하기에 바빴던 골목길의 수국이 처음처럼 자태를 드러내고, 올 해 들어 초면인 나비가 비로소 마음에 인화된다. 한여름 복판에서 나비를 처음 보다니! 수없이 왔으나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던 풍경들이 어디 나비뿐이겠는가.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미지와 비의들로 가득 차 있는 일상. 그 앞에서 나는 신대륙에 첫 발을 딛는 탐험가가 된다. ‘발견’은 타자를 향할 때보다 자기 자신을 향할 때 더 빛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육천 원 삼계탕
마음에 점을 찍는다. 점심이다. 말의 본 뜻대로 식사량을 줄이는 연습을 한다. 한 술 뜨고 나선 또 한 술이 자동적인 동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쥐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은 뒤 입 속에 들어온 찬에 집중을 한다. 한 술과 한 술 사이의 간격이 바툼하지 않을수록 여유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밥맛이 살아난다. 서너 가지 찬으로 요기를 하던 습관을 들인 뒤로는 평소에 맛보지 않던 음식 한두 가지만 늘어도 그날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듯 만족감이 온다. 회식이 일상이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축복이다. 초복 앞두고 동탄우체국 구내식당에 갔더니 삼계탕이 나왔다. 육천 원 식권으로 먹는 삼계탕은 많은 돈을 쓰면서 누리는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소한 쾌락을 준다. 풍요의 시대에 방법적으로 근근이 사는 자의 식도락이다.

사물애
이사를 오면서 집을 열 평쯤 줄였다. 줄어든 집에 맞게 세간도 절반쯤 줄였다. 공간이 바뀌니 삶이 바뀐다. 우선 물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서 교환가치 대신 사용가치를 따지게 된다. 집어든 상품이 꼭 필요한 것인가를 묻고 소비를 줄이게 된 것은 것은 좁은 집이 준 뜻밖의 선물이다. 간직한 사물들에 때를 묻히며 살아보려 한다. 사물들은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오랫동안의 친교가 가능한 우정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에어컨 실외기와 부채
에어컨 실외기가 사납게 돌아가고 있다. 실내의 쾌적을 유지하기 위해 열기를 토해내느라 거침이 없다. 더운 바람이 악담을 퍼붓듯 실외기 옆의 풀잎들을 못살게 굴고 있다. 나도 저 혼자 좋으면 그만인 저 에어컨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빙하가 녹아내리거나 말거나. 온열질환 노동으로 누군가 쓰러지거나 말거나. 십여 년 전 제주 벽화재에서 오석훈 화백에게 선물 받은 부채를 다시 꺼내들었다. 먹빛의 현무암 위로 북두칠성이 그려진 부채다. 부채 바람결에 섬바람과 별의 호흡 그리고 지구의 숨결이 스쳐지나간다. 지구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좋고, 송전탑이나 전기에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적잖이 놀랍기도 하다. 누가 곁에 있다면 이 바람을 나눠줄 수 있으련만, 수평선을 넘는 범선처럼 함께 펄럭일 수도 있으련만. 무시무시한 여름이 간신히, 다정해진다.

고통
옛 노트를 꺼내 읽는다. “고통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었다. 이것이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이 뜻하는 것은 피와 고통을 통하여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 기막힌 시대이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일기『시간 속의 시간』을 읽던 그 가난한 청년이 사라져 버렸다.(끝)

 

‘부평위클리’ 5천원 후원구독자를 모십니다(클릭)

About THE BUPYEONG WEEKL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