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기자

거대한 호박 조형물로 현대미술계에 독보적 자취를 남긴 일본의 대표적 전위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27일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는 쿠사마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튜디오는 고인에 대해“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고, 사랑과 영혼을 탐구한 97년의 생애를 보냈다”면서 “그의 뜻을 이어 예술을 통해 세계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과 힘을 전하겠다”며 애도를 표했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부유하나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로 인해 유년 시절부터 겪은 환각과 강박의 경험은 훗날 그녀 예술의 자양분이 되었다. 교토시립예술학교에 진학했지만 제도 교육 시스템에 염증을 느껴 홀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52년 첫 개인전을 연 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미국행은 우연히 중고 서점에서 미국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태평양에서 영감을 받아 화면 가득 거대한 망을 펼치는 ‘무한 그물’ 연작을 펼쳐 보였다. 쿠사마는 물방울과 그물 등 무한과 자기소멸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또한 천에 솜을 채운 남근상 ‘소프트 스컬프처’, 거울과 조명을 활용한 설치 작품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나체의 남녀에게 물방울무늬를 그려 넣는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 도덕과 사회질서에 도전했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와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해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점과 망을 통해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무한의 감각’을 조형화했다.

이후 호박과 거울, 빛과 점을 결합한 몰입형 설치작업들이 폭발적인 대중성을 얻으면서 현대미술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가하면서 국제 미술계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99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면서 한달음에 성큼 국제적 거장의 반열에 들었다.
2011년부터 영국 테이트모던 등 유럽과 미국 주요 미술관을 순회한 회고전은 일약 ‘쿠사마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과도 인연이 닿아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쿠사마 야요이: A Dream I Dreamed’ 전을 개최했다. 신작 30점을 포함해 회화·조각·설치 등 118점을 선보인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순회전이었다. 이듬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이 이어졌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하며 예술과 패션의 경계도 허물었다. 2017년에는 도쿄 신주쿠구에 그의 작품을 상시 감상할 수 있는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을 열었다. 쿠사마는 200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고, 2009년 일본 문화공로자로 선정됐다. 2016년에는 일본 문화예술계 최고 권위의 문화훈장을 받았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