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한하운 백일장 유감

글쓴이: 이장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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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부평문화원이 주관한 한하운 백일장이 열렸다.

‘보리피리’ 시도 유명하지만, 천형이라는 한센병을 지닌 시인이라는 특이성도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문학인 한하운의 생애를 좇아가는 일이 현재로서는 버겁다. 왜 그럴까. 그가 월남인라는 점, 그리고 출판사와 고아원도 경영한 점, 그리고 사회 사업을 펼친 점이 아마도 문학인 한하운보다도 사회복지에 힘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하운이 인천 부평과 인연이 맺은 것은 광복 이후다. 그 이후로 부평과 인연을 맺고 부평 십정동에서 숨을 거둔 흔적이 아마도 부평문화원에서 인천가치재창조 공모 사업에 한하운을 끼어 넣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문학인을 기리기 위해 돌을 세우는 행위는 누가 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문학인은 기업가가 아니기에 여력이 된다고 시비 등을 쉽게 세워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 문학사에 자리한 위치 등도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가 걸어온 생애를 따라가서 살펴보는 통과제의가 있는 뒤에나 돌에 시를 박거나, 생애를 박거나 할 수 있는 아주 세밀하고 엄밀한 행위로서 문학인을 대상으로 돌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문학사적 평가와 생애를 검증하지 못한 상태에 놓인 한하운을 문학인으로서 헌양하는 행위를 무작정 시작했다는 것이 문학인 한하운을 기리기 보다는 사업 이벤트의 한 요소로서 한하운을 선택했다는 자기 고백의 방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평에서 한하운 백일장은 느닷없는 것이다.

우선 한하운을 문학사에 올려 놓고 평가를 한 뒤, 그리고 부평구민들과 공감대를 우선 형성하는 행사를 진행한 뒤, 사이버 문학관을 짓든, 한하운 시비를 만들던 해야 한하운 시인을 시인으로서 바로 세우는 일임을 제발 생각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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