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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추석 연휴가 길어서, 전국에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9시간 넘게 달려 고향에 늦은 밤에 도착했다. 내가 자라고 산 동네는 40년이 넘게 주거전용지역으로 묶여 있는 바람에 나이 드신 눈 멀고 귀 먹은 어머니처럼 쭈글쭈글한 상태로 오래 시간 버티고 있었다.
고향 집 앞마당에 살구나무 가지에 집을 지은 왕거미들이 거미줄을 치며 세월을 낚고 있는 풍경을 고향을 오간 20년 동안 변함이 없는 풍경이다. 대문 앞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호랑가시나무 위자락은 손이 닿지 못해 더벅머리 총각마냥 서 있다. 그래도 정겹다.
40년 된 주택이니 거실 바닥도 꺼지고, 안방 문을 열며 삐거덕 소리를 낸 지 오래됐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고향에 온 것을 실감한다.
2층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세가 나가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푸념한다. 간혹 중국인이 와서 에어콘 있느냐 등을 물어볼 뿐이다. 낡은 집을 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앞으로도 2층은 아무도 살지 않을 듯하다. 40년 전부터 고향 동네를 전용주거지역으로 행정이 묶어 놓다 보니 뭔가 할 여력이 생기지 않아서 동네 슬림화는 가속화되고 이제는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향 동네 행정이 40년 동안 변함이 없다. 참 갑갑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긴 추석 연휴로 조만간 결혼하는 조카와 작년에 결혼한 조카들도 다른 조카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소비쿠폰 이야기가 나왔다. 갓 30년을 넘기 조카는 자기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빚이 되는데 왜 신청하겠나?였다. 과일을 깍고 있는 나이든 50대 이상 사람들은 별다른 소리를 못하고 침묵했다.
16조 가량 뿌린 소비쿠폰이 2030대에게 빚으로 온다는 사실을 50대 이상 나이든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조카 말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또 다른 조카는 나를 보고 삼촌은 ‘영포티’이냐고 말했다. ‘영포티’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정말 몰랐다. 조카는 나이든 사람들이 젊게 보이려고 옷을 젊게 입고 다니는 40대 이상 사람들을 말한다고 했다. 조카에게 젊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서 야구 모자를 썼고, 티셔츠는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Rory Gallagher가 그려져 있어서 구입해서 편안하게 즐겨 입는 것이라면 영포티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했다.
조카가 말한 ‘영포티’를 검색해 보았다. 2030세대들이 40대 이상 나이든 사람들이 2030대가 누려야 할 자유와 경제적 기회들을 앗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담은 용어로 정착되고 있다는 설명에 추석 전날 조카가 던진 ‘삼촌은 영포티 같다‘는 말이 내 귀에서 지금도 떠나지 않는다.
2030세대에게 빚으로 안겨주는 16조 소비쿠폰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받아 먹고, 미래세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젊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옷을 입고 다니는 4050세대에게 분노의 감정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포티’로 발현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2030세대에게 빚으로 돌아와 경제 기회를 박탈하는 16조 소비쿠폰 정책을 박수치고 받아먹은 4050세대들에 대한 거대한 분노 표출이 조만간 임박해 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4050세대 나부터 2030세대들에게 미안하고 사죄한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