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열의 발바닥 단편소설] “지금은 2012년 8월 9일 오후 8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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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공책을 열어 제쳤다. 시간표가 보였다. 1교시에서 10교시까지. 교과목, 강의실, 교수명.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공책을 어디에서 구입했지. 아니 언제 구입했지. 도무지 알 길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최루탄 알갱이들이 눈 속으로 박혀 있는 와중에 들렸던 학교 앞 문구점에서 그 다양하게 전시된 필기구를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보았던 대학 신입생 때 촌스러운 내 모습이 짤막하게 지나갔다.

다음 장을 넘겼다. 샤프로 쓴 영어 단어가 나왔다. Concentric. 도대체 내 공책에 누가 영어단어를 썼지. 내 필체가 분명 아니다.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이 쓴 글씨체다. 어떻게 내 공책에 필기를 한 것 일까.

‘뭐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쓸데 없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영어 단어 끝에는 utterly(완전히)가 놓여 적혀 있었다.

다음 장을 넘겼다. 신문 스크랩이다 <한겨레신문> 1991년 10월 15일(화요일)<7>자가 칼로 오려서 풀에 붙어 있다. <전망대-정운영>. 담배인지 뭐지 모르겠지만 정운영(논설위원)의 캐리커처에 손을 쥐고 있는 제목 크기만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정운영은 죽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죽었듯이, 1991년에 캐리커처 그림에서도 단박에 봐도 50-60대로 보이는데, 죽지 않았으면 뒷방 영감이 되어 있겠지 뭐.’

‘뭐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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