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 혹은 멍청함에 대한 고찰(考察)

정유천(기타리스트)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금, 한동안 ‘난가병’이 유행병처럼 번지며 수많은 잠룡(혹은 잡룡?)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제야 조금씩 윤곽이 잡히는 듯하다.

시끄럽고 혼탁한 대선 판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치폴라(Carlo M. Cipolla)는 아래와 같이 ‘멍청함의 법칙(The Basic Laws of Human Stupidity)’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언제 어디서나 멍청한 사람은 존재한다. 교수, 노동자, 정치인, 종교인, 학생, 예술인 등 구분 없이 모든 집단이나 계층에는 일정 비율의 멍청한 사람이 있다.

둘째, 멍청함은 사람의 다른 특성과 무관하다. 학벌, 직위, 재산, 성격, 지성, 지식 등과 관계없이 멍청한 사람은 그저 멍청하다.

셋째, 멍청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도 이득이 없다. 이 법칙의 핵심으로 멍청한 사람은 자신과 남 모두를 손해 보게 만든다.

넷째, 멍청하지 않은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의 해악을 과소평가한다. 특히 지능적인 사람일수록 ‘쟤가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하겠어…’라는 안이함 때문에 더욱 더 큰 피해를 키울 수도 있다.

다섯째, 멍청한 사람은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도둑이나 악당은 적어도 자기 이익이라도 챙기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무런 이득 없이 무작위로 피해를 입힌다.

이렇게 다섯 가지인데 내용을 보면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사회심리적 통찰도 충분히 담겨있다. 치폴라는 위 법칙에 의거해 4가지의 인간유형을 정의했다.

첫째, 지혜로운(Intelligent) 사람으로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익을 주는 사람.
둘째, 악당 또는 영악한(Bandit) 사람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셋째, 순진한(Helpless) 사람으로 타인의 이익을 돕지만 자신은 손해 보는 사람으로 심하면 소위 말하는 ‘호구’ 소리를 듣게 된다.
넷째, 멍청한(Stupid) 사람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는 “어리석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신들조차 헛된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멍청함이란 조직도 없고 시스템도 없지만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은 예측과 대응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멍청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악(惡)보다 위험하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 hoeffer)는 “어리석음은 악보다 더 위험하다. 악은 대항할 수 있지만, 어리석음은 설득이나 토론으로는 제압할 수 없다.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무력하다. 이성적 설득은 소용없고,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종종 공격적이며 자신감에 차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총 13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다.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 속에서 그들은 과연 치폴라가 말한 네 가지 인간 유형 중 어떤 사람이었을까?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떤 정치 진영이 이기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가이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단 하나 바라는 건 다음 대통령만큼은 그 네 가지 유형 중 네 번째, 즉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서는 만큼, 최소한 자신과 국민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About THE BUPYEONG WEEKL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