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인현동의 불길, 무대 위에 다시 살아나다

고행산 기자

 

2026 인천연극제 대상·연출상·희곡상 수상작… 대한민국연극제 인천 대표작으로 선정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 《매몰리 57-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가 지역 연극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극단 십년후의 이 작품은 2026 인천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 인천 대표 참가작으로 선정됐다.

《매몰리 57》은 1999년 10월 30일 발생한 인현동 화재 참사를 소재로 삼았지만, 사건을 단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기억’과 ‘증언’, ‘책임’이라는 화두를 통해 오늘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대는 참사 발생 27년 후의 한 호프집. 매년 10월 30일이 되면 그날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영혼이 다시 이곳에 모인다. 이들을 지켜보는 존재는 두 마리의 쥐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 화자의 시선을 통해 참사의 기억과 남겨진 이들의 책임을 되짚는 독특한 연극적 형식이 눈길을 끈다.

기획과 제작을 맡은 송용일은 “이 작품은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며 “남아 있는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를 묻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증인의 자리에서 작품을 만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특징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존재인 ‘쥐’를 극의 중심에 세웠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사건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책임,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연출을 맡은 김윤주는 작품이 시작된 배경에 대해 “인현동 화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는 공통적으로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회의 시선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현동에서는 왜 청소년들이 호프집에 있었느냐는 말이, 세월호에서는 학생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 이태원에서는 축제를 즐기러 간 것 아니냐는 뒷말이 뒤따랐다”며 “젊은이들이 놀고 즐길 권리마저 비난받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인현동 화재 당시 청소년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은 부족했다”며 “참사는 이후 청소년 문화시설 확충의 계기가 됐지만, 그 대가로 희생된 57명의 생명은 너무도 컸다”고 말했다.

작품 제목 ‘매몰리 57’은 기억(memory)과 매몰(埋沒)을 결합한 조어다. 여기에 참사 희생자 수인 57을 더해 잊히지 말아야 할 기억의 의미를 담았다.

김 연출은 “고통스럽더라도 기억이 매몰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그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극단 십년후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천의 아픈 역사를 예술로 기록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매몰리 57》은 지역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가 반복해 온 재난의 기억과 책임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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