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현 기자
인천시립박물관, 기증특별전 ‘어지러이 푸르른… 필묵의 귀환’ 개최
대표작·유품 362점 공개… 한국적 산수화의 거장 예술세계 재조명
인천시립박물관이 한국 동양화단의 거목 창운(蒼暈) 이열모(1933~2016)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기증특별전을 마련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16일부터 7월 12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어지러이 푸르른… 필묵의 귀환’**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유족들이 기증한 작품과 유품 등 362점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평생 우리 산천을 화폭에 담아온 화가의 예술 여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이열모는 열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인천에서 겪으며 성장한 그는 서림초등학교와 인천중·인천고 재학 시절 사생의 즐거움에 눈뜨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해 동양화의 대가인 심산 노수현과 월전 장우성에게 사사하며 본격적인 화업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서구 현대미술을 접하며 오히려 한국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 고유의 토속적 정서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신념을 얻은 그는 귀국 후 전국의 산천을 찾아다니며 우리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국전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국전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또한 경희대와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특히 이열모는 기존의 동양화 창작 방식을 뛰어넘어 현장에서 직접 먹과 붓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필묵사생(筆墨寫生)’을 개척했다. 직접 고안한 화구를 메고 전국을 누비며 자연과 마주한 자리에서 즉흥적이면서도 치밀한 필선을 구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유독 사랑한 대상은 겨울의 나목(裸木)이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의 뼈대와 겨울 산하의 적막한 풍경은 그의 작품 속에서 담백하고 절제된 미학으로 승화됐다. 군더더기 없는 필선과 맑은 화면은 관람객에게 깊은 여운과 정서를 남긴다.
전시 제목인 ‘어지러이 푸르른…’은 그의 아호인 ‘창운(蒼暈)’에서 따왔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시절 국전에 출품한 작품 ‘고악(高嶽)’을 계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 아호에는 평생 우리 산하를 바라본 그의 맑고 깊은 시선이 담겨 있다.
전시장에서는 인천의 항구와 군선(群船), 낙조 풍경을 비롯해 전국의 산하를 담은 대표작들이 공개된다. 특히 모교인 인천중학교의 웃터골 풍경을 노년에 다시 그린 작품에서는 청소년 시절을 향한 화가의 그리움과 애정이 묻어난다.
강원도 산골, 경주 남산, 남해 욕지도는 물론 중국 계림과 황산, 미국 웨스트우드와 산타아니타 등을 그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낯선 풍경조차 한국적 필묵 정신으로 해석해낸 그의 독창적인 ‘이국 산수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스케치북, 백자연적, 붓받침, 안료, 인장, 벼루 등 실제 사용했던 화구와 아카이브 자료도 공개된다. 스승인 월전 장우성과 심산 노수현, 동료 화가 지목 이영찬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예술적 교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김태익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평생 우리 산하를 사랑하며 맑고 격조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한 창운 이열모의 발자취를 되짚는 뜻깊은 전시”라며 “예술적 고향인 인천에 평생의 역작을 기증한 유족의 뜻과 함께 화가의 아름다운 귀환을 음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