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천 블루스기타리스트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그의 국회의원직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는 한 정치인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선거제도, 특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수정당을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기본 취지는 분명하다. 거대 정당 중심의 지역구 선거제도만으로는 다양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국회의석 비율을 가능한 한 비슷하게 맞추자는 제도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내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국민적 지지를 얻은 소수정당이라면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에 진출할 기회를 얻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국회 진출을 활성화하고 사표를 줄이며,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 구조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문화·예술계, 상공업계, 노동계 등 기존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치 참여의 통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가 현실 정치와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 계열의 미래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더불어시민당 등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대 정당 입장에서는 본당 이름으로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할 경우, 이미 확보한 지역구 의석 때문에 연동형 계산에서 불리해질 수 있었다.
결국 거대 정당들은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별도의 정당, 이른바 ‘위성정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거대 정당의 정치공학적 전략에 활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고 합쳐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용혜인 의원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용 의원은 두 차례 비례대표 방식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물론 특정 정치인의 자질이나 능력을 이 글에서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제도의 과정과 구조다.
정치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역시 중요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와 합리성, 그리고 형평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도라면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과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 정치세력이 제도의 틈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본래 정신에 부합하는지도 고민해 볼 문제다.
물론 비례대표제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만으로는 국회에 진출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목소리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문화와 예술, 산업과 경제, 노동과 시민사회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이 국민을 대표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문제는 비례대표제가 특정 정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정치적 도구나 선거용 꼼수로 활용될 때다.
소수정당의 정치 참여 확대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제도가 실제로는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창당과 의석 확보 전략으로 이용된다면, 이는 정치 발전을 위한 제도라기보다 오히려 정치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도입 당시 분명한 이상과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는 좋은 취지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공정하게 받아들여지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선거는 결국 국민의 선택으로 정치인을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다. 국민의 지지가 의석으로 최대한 공정하게 연결되어야 하며,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현행 비례대표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소수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것도 민주주의지만, 그 제도가 국민의 선택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의 정신과 거리가 멀어진다.
좋은 제도란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여야 한다.
이번 논란을 특정 정치인 한 사람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어떤 선거제도를 통해 국민의 뜻을 국회에 반영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