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열의 발바닥 단편소설] “지금은 2012년 8월 9일 오후 8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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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의 글에는 2012년 8월 9일에는 진지전과 기동전, 혁명 단어보다는 떡갈나무, 도토리 등 낱말이 눈에 들어 왔다. 아직도 진지전이니 기동전이니 그 단어가 뻗어가는 길을 나는 모르겠다. 현재 나는 속도전에서 낙오된 채, 엉금엉금 이 시대를 기어간다.

냉장고 문을 열기 위해, 작은 골방에서 한 걸음만 디디면 나오는 코닦지만한 부엌으로 나갔다. 냉장고 문 앞에 자석에 붙어 있는 설명서와 안내문들이 눈에 들어 왔다. ‘사용해서는 안될 부정적인 말들’ 목록을 아내는 붙어 놓았다. 자석에 딱 붙어서 옴싹달싹도 하지 않는다. 그 금지 단어에는 늘 사용하는 말들이 줄줄이 들어 있다. 나는 빨간펜을 들고 와서, 밑줄을 세 개 긋고 “늘 사용할 말”로 바꾸고 싶었다.

‘냉장고 앞에 왜 서 있지’

반사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캔을 집어 들었다. OB라이트 1.5L는 대형마트에서 사면 아파트 안에 있는 구멍가게보다 50원이 더 싸다. 어제 구멍가게에 사 둔 것이다. 두 개를 사고 싶었지만, 호주머니는 헐렁했다. 나는 김을 찾았다. 김은 없었다. 물도 꺼집어 냈다. 나는 물로 안주 삼아 먹는 버릇이 최근 생겼다. 안주 삼아 물을 마신다. 썩 좋은 버릇은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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