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마장면 (지금의 효성ㆍ청천ㆍ산곡리 = 馬場面)과 석곶면 (石串面)이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 (元積山)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동산을 이루고 그 뫼뿌리 끝 밑에 (산곡동 82) 마을이 생기니 뫼(山)의 끝에 있는 마을이라서 ‘뫼끝말’ 이라 불렀고, 산골짜기의 마을이라 ‘산곡리 (山谷里)’라 하였다.
‘뫼끝말’을 한때는 ‘뫼꽃말’로 불러왔으나 뫼꽃(=山花)과는 전혀 무관하나, 마을 뒷산(元積山)에 꽃들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동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네사람들은 ‘뫼꽃말’ 자주 불러왔다.
이는 ‘뫼끝말’의 변음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장끝말’은 마장 (馬場=목장)이 끝나는 마을이라 장끝말(場末峴=장끝고개)라 불렀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초지무성한 벌판으로 억새풀(새벌이)이 많아 국영마장(馬場)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청천동을 마제이(馬場)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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