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 별세

최광석 기자

일본 매체 TBS는 10일 “하리모토 이사오(장훈의 일본명)가 9일 오후 5시께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향년 86세.

장훈의 별세 소식에 현지 매체도 앞다퉈 속보를 냈다. NHK는 “일본 프로야구(NPB) 최다 3085개의 안타를 쳐 ‘안타 제조기’라고 불린 장훈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마루스포는 “장훈은 1976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해 리그 제패에 공헌했다”며 “희대의 천재 타자가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 모임인 사단법인 일구회도 10일 “故 장훈 선생님께서 평생에 걸쳐 보여주신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후배를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한국과 일본 야구계에 남기신 크나큰 발자취는 오래도록 우리 야구인들의 가슴속에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고인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년간 선수로 활약하며 통산 504홈런, 1천 676타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타격왕 7회, 최다안타 3회, 최고출루율 9회, 베스트나인 16회 등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기며 일본 프로야구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새겼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은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서 성장했다. 네 살 무렵 사고로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는 심각한 장애가 남았다. 결국 장훈은 왼손잡이로 변신했고 훗날 일본을 대표하는 왼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다섯 살이던 1945년에는 히로시마 원폭을 직접 경험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 일본 사회의 멸시와 편견을 견뎌야 했다. 고교 졸업 후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한 그는 데뷔 첫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프로 3년 차인 1961년에는 타율 0.336으로 생애 첫 타격왕에 올랐다. 이듬해 타율 0.333 157안타 31홈런 99타점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데 이어 500홈런, 300도루까지 돌파했다.

고인은 생전 정확성과 장타력, 주루 능력을 모두 겸비한 타자로 이름을 새겼다. 1981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고인은 은퇴 후에도 야구계를 떠나지 않았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TBS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본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 야구와도 인연이 깊었다. 고인은 한국프로야구 출범 원년(1982)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는 등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일본 야구의 전당에도 헌액된 고인은 얼마 전 작고한 고(故) 백인천 감독의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도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백 전 감독을 추모하며 “백 전 감독은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였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고인은 2024년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몇 년 전 국적을 바꿨다. 현재는 일본 국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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