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천(블루스기타리스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저술가이며 시인이다. 본관은 나주이며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정조 재위 기간에 문신으로 활약하며 정조의 신임을 크게 얻었다.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어 다양한 학문적·행정적 역량을 펼쳤으며 수원화성 건설과 거중기 설계 등 과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특히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는 일에 힘썼다. 장기간 유배생활을 겪었으며, 유배 중에도 학문에 정진해〈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등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애절양’은 다산이 지은 7언 20구 한시로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전라도 강진에 유배 중이던 1803년 지은 시로 그 내용 중 10구는 이러하다.
蘆田少婦哭聲長 / 갈밭 마을 젊은 아낙이 통곡하며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 / 관아의 문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 / 전쟁터에 나간 지아비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自古未聞男絶陽 / 예로부터 사내가 제 양물을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이 없네
舅喪已縞兒未澡 / 시아버지는 삼년상 치르고 아이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 / 삼대의 이름이 모두 군적에 올라 있네
薄言往愬虎守閽 /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里正咆哮牛去早 /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구간 소를 몰아가버렸네
磨刀入房血滿席 /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自恨生兒遭窘厄 /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강진에 있는 갈밭 마을 사내 하나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 낳은 지 사흘 된 아이와 이미 삼년상을 치른 아비까지 군적에 오른 데다 군포를 징수하러 온 리정(里正)이 키우던 소까지 끌고 가버렸다. 절망한 사내는 ‘자식을 낳아 이런 일을 당했다’며 스스로 제 성기를 절단했다.
다산이 이 이야기를 듣고 쓴 시이다.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탐관오리의 착취로 백성들의 고통이 가히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이다. 당시 조선은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징수하는 ‘백골징포(白骨徵布)’와 ‘황구첨정(黃口簽丁)’ 같은 부조리한 제도가 존재하던 사회였다. 힘없는 백성은 생존조차 위협받으며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 반면, 지배층은 세금 부담 없이 호의호식하며 사회적 특권을 누렸다.
이제 대선이 끝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우리 사회의 구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백성의 고통에 둔감했던 조선 후기처럼, 오늘날에도 부조리하거나 불평등한 제도와 관행이 존재하진 않는지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청년들과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현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 불안에 기회의 불균형, 불공정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더불어 그동안 지적되어 온 특권층 개혁, 사법부 개혁, 언론 개혁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애절양’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백성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는 나라, 모두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