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스파이크 서버 장윤창 전 경기대 교수 별세

최광석 기자

한국 남자배구의 간판 故 장윤창 전 경기대 교수

한국 남자배구의 간판 장윤창 전 경기대 교수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1980∼90년대 한국 남자배구를 호령했던 1세대 거포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선수 시절 높이 뛰어올라 유연한 허리를 활처럼 휘며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날렸는데, 마치 돌고래의 점프와 비슷해 ‘돌고래 스파이커’로 불리기도 했다.

인창고 2학년이던 1978년 역대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만수, 김호철 등과 함께 한국의 사상 첫 4강 진출을 견인했다. 곧 이어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84년 LA 올림픽 5승 신화를 쓰며 최종 5위의 성적을 거둔 것도 그의 힘이 컸다.

고인은 1983년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입단해 맞수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실업배구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프로배구 출범의 발판이 된 대통령배 원년 대회(1984년) 때 고려증권을 초대 챔피언에 올려놓으며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이후 고려증권은 그의 눈부신 활약으로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고인은 현역 은퇴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체육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일했다. 또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을 역임하는 등 행정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고인은 평소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등 철저한 몸 관리로 주변에 자자했지만, 끝내 병마를 피해가지 못했다. 측근의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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