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산(원적산-원적로)관통도로가 생기기 전 사진으로 1965년경 부평한일초등학교 (‘인천의 어제와 오늘’ 발췌, 필명 kkkk8155 - 한동규 제공)

[박명식, 부평지역사 20] 마장(馬場) 이야기(3).. ‘눈다리개’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문화도시는 한순간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을 근거로 2021년 1월 6일 부평의 법정 문화도시 지정은 향후 10년간 지역 정체성을 차별화 할 수 좋은 계기로 부평구민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가 부평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이 지역에서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코자 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여기의 전제 조건으로 참여 주민의 문화도시 정책 이해와 자발적인 참여 의식 증대를 위한 거버넌스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지도서(1757~1765) 방리조에서 살펴보면 인구수는 정남(丁男)과 정녀(丁女)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전체 거주하고 있는 인구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인구수에는 은루(隱漏)가 상당히 존재한다.

기록에 나타난 부평도호부에는 15개면 97개 동⋅리⋅촌으로 10,898명(호수 2,923호)으로 19세기 말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3개의 동⋅리로 이루어진 마장면(馬場面)의 인구수는 312명(호수 90호)으로 원적산과 장수산 맑은내(川)가 흐르는 조그마한 전원 마을이었다.

마장면에는 청천리(淸川里, 맑은내, 면소재지임), 산곡리(山谷里, 뫼골말), 효성리(曉星里, 새벼리) 등 마을이 있었으며, 이 일대가 수원이 없어 농경하지 못하는 허허 벌판인데다 억새풀만 우거진 초지라서 고려시대부터 말을 사육하였기 때문에 마장(馬場)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 통폐합을 실시하여, 인천부 관할구역을 개항장(開港場)으로 축소하고 인천부 여타지역과 부평군 전부를 통합하며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자를 따서 새로이 부천군(富川郡)이라 칭하였다. 계산동에 있던 부평군청을 폐쇄하고 새로운 부평군청을 문학(文鶴)에 있는 옛 인천부 청사에 개설하였다.

이리하여 부평(군)이란 이름은 결국 없어지게 되고 다만 새로 생긴 부평리(지금 계산동)⋅하리⋅대정리(지금 부평동)⋅가현리⋅도두리⋅후정리⋅갈월리⋅항동리⋅구산리⋅신대리⋅작정리⋅화전리⋅마분리⋅청천리⋅산곡리⋅효성리 등 16개 마을이 부내면(富內面)으로 옛 군내면⋅서면⋅마장면⋅동소정면이 통폐합된 것이다.

1916년도 측도한 1 : 50,000 지도로 이때 산화촌(山花村)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등장. 한글로 바꾸면 ‘뫼꽃’이 되는데 ‘뫼골’이란 의미의 ‘산곡(山谷)’과 대비되는 지명이다.

이 때 부천군(富川郡)에는 부내면(富內面)⋅계양면(桂陽面)⋅오정면(吾丁面)⋅계남면(桂南面)⋅서곶면(西串面)이 있었으며, 1940년 4월 1일 인천부역(仁川府域) 제2차 확장으로(부령 제40호와 경기도령 제5호)으로 부천군 문학면, 남동면, 부내면, 서곶면 등 4개면을 인천부에 편입시키고, 이 때 불행하게도 마장면 산곡리⋅청천리(馬場面 山谷里⋅淸川里)가 백마정(白馬町-하구바쬬)⋅천상정(川上町-가와가미쬬)이란 일본식으로 개칭되었고 각리 마을이름도 일본식으로 바뀌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인천부를 제물포시(濟物浦市)로 개칭하고, 출장소를 지청(支廳)으로 바꾸고 1946년 1월 1일부터는 왜식 정명(町名)을 전부 우리 고유의 동명으로 개칭하여 쓰게 되었다.

  • 밤나무골과 밤나무고개 :
    뫼끝말 남쪽 마곡초등학교 남쪽 골짜기를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이 골짜기로 들어가는 작은 고개를 밤나무고개(栗峴)라고 부른다.
  • 할딱지 :
    지금의 산곡 북초등학교에서 마곡초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할딱지라 부르는데 이는 노인들이 언덕을 오를 때 숨이 차서 할딱거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밤재뜰⦗栗峴野⦘ :
    마장뜰 중 밤고개 아래로 펼쳐진 들을 밤재뜰이라 한다.
  • 원적산길 :
    백마장 입구에서 세일고를 지나 철마산 관통도로(1972년 10월 개통)를 넘어 가좌동 지나 인천교로 연결된 도로인데, 원적산을 철마산으로 잘못 알고 천마로(天馬路)라 부르던 것을 원적산으로 바로 잡아 원적산길로 부르게 되었다.
  • 신노개들 :
    부평GM자동차 공장 일대를 ‘신노개들’로 불러 왔는데 수원이 없는 천수답으로 비가 오지 않아 천신(天神)이 노(怒)했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라고 전한다.
  • 까까산과 장수산 :
    청천초등학교 뒷산은 일제가 헬기장을 만들기 위해 산을 깍아서 까까산으로 불러 왔 고 산봉우리가 편편하여 6⋅25전쟁 후 미군의 헬기장으로 썼는데, 요즈음 이 곳 사 람들이 등산을 즐겨 그 이름 장수산(長壽山)이라 하고 장수정이란 팔각정이 1997년 10월 2일 세워져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에 인천나비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 검정사택⋅도깨비시장 :
    청천1동과 산곡1동 경계선에 세월천이 흐르고 그 오른쪽 경계선에 검은 기름 종이 또는 콜타르로 벽을 쳐서 지은 사택을 검정사택이라 불러 왔고, 지금은 뫼골공원 아 래 도깨비시장 일대로 변했으며, 도깨비시장은 미군 부대 물건을 단속을 피하여 번 개같이 게눈 감추듯 장이 섰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여서 부른 이름이다.
  • 눈다리개 :
    예전에 청천(淸川)은 부평GM자동차 공장 안으로 흘러 아래신트리로 해서 원통천(굴 포천)과 합류하였다. 아래신트리는 옛 청천 부지가 폐천된 곳으로 부평동과 갈산동 의 경계선이다. 이 맑은 내⦗淸川⦘에 김포국도로 가는 하천위에 놓인 옛 다리가 누런다리⦗黃橋⦘이기에 황교개울이라 또는 눈다리개라 불러 왔다.

 

네이버 지도에서 발췌한 산곡동과 청천동 일대
철마산(원적산-원적로)관통도로가 생기기 전 사진으로 1965년경 부평한일초등학교
(‘인천의 어제와 오늘’ 발췌, 필명 kkkk8155 – 한동규 제공)
부평4공단이 조성되기 전 1960년 초반으로 청천(淸川)이 GM공장을 가로 질러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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