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기자
1960~70년대 은막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매료시켰던 이탈리아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별세했다고 AFP·AP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7세. 카르디날레의 에이전트인 로랑 사브리는 그가 프랑스 파리 인근 느무르에서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AFP에 전했다. 장례 일정과 장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로랑 사브리는 “그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유롭고 영감을 주는 여성의 유산을 남겼다”고 말했다. 알레산드로 줄리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역대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여배우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그는 이탈리아의 우아함을 구현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관능적 야성미와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이었던 카르디날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거장인 루키노 비스콘티,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뮤즈’로 생애 총 17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63년 펠리니 감독의 걸작 ‘8과 1/2’에서 주인공 귀도가 구원이라 여기는 환상 속 순수하고 신비로운 여인 ‘클라우디아’ 역을 맡아 열연하며 일약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카르디날레는 1938년 4월 15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6세 때 튀니지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 주최 미인대회에서 우승했다. 대회 부상으로 베네치아 영화제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고, 유럽 각국 영화 관계자들이 그를 주목했다. 초등교사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한 영화에서 작은 역을 맡게 된다.
불행하게도 직후 한 프랑스 영화 제작자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했고, 아들 파트리크 양육을 위해 영화계에 본격 투신했다. 당시 아들을 남동생이라고 속였고, 이 사실은 7년 뒤에야 세간에 알려졌다. 훗날 카르디날레는 자신이 배우가 된 이유에 대해 “그(파트리크)를 위해,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고 싶었던 아이, 파트리크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카르디날레는 1958년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고하’로 정식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8과 2분의 1’을 비롯해 발레리오 추를리니의 멜로드라마 ‘가방을 든 여인’(1961),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핑크 팬더’(1963),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부베의 연인’(1963),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등이 꼽힌다.
그는 2002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진출 당시 한 스튜디오가 독점 계약을 원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왜냐하면 나는 유럽 배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할리우드에 진출해 찍은 작품 중에서 단 하나를 꼽으라면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더 프로페셔널’(1966)이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작품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카르디날레는 그저 아름다운 여배우를 넘어 시대를 앞서간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를 만났을 때 바티칸 의전을 무시하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난 일화는 유명하다. 이 해프닝은 그가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평판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영화계에서의 경력을 따지면 카르디날레는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3대 여배우’로 꼽힌다. 1993년 베네치아 영화제와 200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명예 황금사자상, 명예 황금곰상을 각각 수여하며 그의 공로를 기렸다. 2000년에는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 옹호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친선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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