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여장부’ 배우 김지미 씨 별세

최광석 기자

배우 김지미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2019.10.3/뉴스1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 씨가 미국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고인은 대상포진으로 한동안 고생을 한 뒤 최근 부쩍 쇠약해지면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영화인협회는 영화인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유족과 장례 절차를 조율하고 있다.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인은 1940년 충남 대덕에서 인쇄기계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57년 덕성여고 3학년 재학 중 친지가 운영하던 명동 소재 다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마침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며 영화 ‘황혼열차’에 주연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장희빈’(1961·정창화), ‘토지’(1974·김수용) 등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 중심에서 맹활약하며 35년 동안 무려 7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토지’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윤씨를 연기해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 ‘육체의 약속’(1975·김기영)에서 사랑에 빠진 죄수 효순 역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80년대에도 ‘길소뜸’, ‘명자 아끼꼬 쏘냐’ 등 흥행작에 출연하며 수차례 연기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국내 배우 중 최다 출연작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한 명실상부 한국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고인은 18세였던 1958년 16세 연상인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가 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즈음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과의 불륜스캔들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선언은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이후 톱스타 나훈아와의 동거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고, 6년 만에 사실혼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졌다. 1991년에는 심장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으나 11년 만인 2002년 이혼했다.

‘충무로 여걸’로도 불리며 한국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인은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뒤 ‘티켓’을 비롯해 7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울러 영화행정가로서의 면모도 빛났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왕성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0년에는 마침내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현역 은퇴 후 줄곧 미국에서 여생을 보낸 고인은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김지미를 아시나요’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당시 그는 “나는 여배우에게 모든 걸 연기자로 끝을 내라고 이야기한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일류가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좋은 배우로서 칭호를 받게 되고, 남자와 여자 구별이 안 생긴다.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정말로 연기만 보고 가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또한 “훗날 묘비명으로 새기고 싶은 문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한 배우로서, 한 여자로서,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왔다’라고 새겨 달라”고 했다. 이어 “배우로서, 인생으로서 종착역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 돼 간다”며 “저에게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데뷔 시절 김기영 감독이 지어준 ‘김지미’라는 예명(본명 김명자)이 마지막까지 대중들이 기억한 고인의 이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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