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잦은 이양선의 출몰로 군인들이 番을 섯던 곳(보초를 서던 곳)에 나루터가 생겨
서곶ㆍ계양ㆍ부평 사람들이 배다리시장ㆍ채미전거리에 농산물을 팔러가거나 생활용품 구입하러 자주 이용했으며, 학생들이 통학하던 나루터였다.
2군데 번지기나루터가
있었다. 인천교와 가까운 윗나루와 하류에 아랫나루가 있었으나 비정되어 있다. 아마도 자주 이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인천교가 1958년에 생기면서 그나마 있던 윗나루 번지기나루터도 없어진다.
어릴적 학교 다닐때 ‘개건너 애들’이라고 놀리면, 개건너 통학생들과 원인천 동창들하고 가끔 다투고는 했던 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야구의 도시답게 응원하다 보면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게 된다.
뱃사공中 ‘백낙구’는 산곡동에 형제들이 살았으며 큰형 낙일, 둘째 낙삼, 세째 낙오, 넷째 낙칠 형제가 산곡동에 거주했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