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平 文化 이야기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4] 항공사진으로 본 주안염전과 율도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6년경 항공사진으로 본 인천 앞바다의 주안염전 (빨간 화살)과 율도 (파란 화살)를 볼 수 있다. 율도는 19세기 한 때 인천의 내항으로 세곡선 창고를 만들고,(마을 이름을 ‘원창동’ 이라 했다 – 원래 창고가 있던 마을) 마차를 이용하여 아나지고개를 통해 마포 경창으로 쌀을 실어 날랐다. 한남정맥 분지로 둘러쌓인 부평을 비교적 자세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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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1] 번지기나루터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잦은 이양선의 출몰로 군인들이 番을 섯던 곳(보초를 서던 곳)에 나루터가 생겨 서곶ㆍ계양ㆍ부평 사람들이 배다리시장ㆍ채미전거리에 농산물을 팔러가거나 생활용품 구입하러 자주 이용했으며, 학생들이 통학하던 나루터였다. 2군데 번지기나루터가 있었다. 인천교와 가까운 윗나루와 하류에 아랫나루가 있었으나 비정되어 있다. 아마도 자주 이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인천교가 1958년에 생기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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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9] 창이ㆍ단이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산곡동 장고개에는 현재 ‘제3보급단’이 위치하고 있다. 사령부 본관 입구에 ‘창이와 단이 소나무’가 있어 옛 부대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1945년에 부평조병창을 중심으로 부평에 Ascom City의 7개 부대가 들어선다. 그 중 하나인 Camp Grant 미군부대가 이곳에 들어온다. 닉슨톡트린으로 1973년 6월30일 애스컴 시티가 해체되면서 캠프그란트도 철수한다. 그리고 캠프그란트 자리를 한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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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8] 부평향교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인천에는 향교가 4군데가 있다. 교동향교(우리나라 최초)ㆍ강화향교ㆍ인천향교ㆍ부평향교 이다. 부평향교는 ‘前堂後廟’ 방식의 배치 구조로 조선말까지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의 공립학교 역할과 현재는 유교성현들의 제례를 지내고 있다. (명륜당 정면 5칸, 대성전 정면 3칸의 구조) 국가에서는 관학으로 學田과 책ㆍ노비 등을 지원, 종6품 교수와 정9품 훈도를 두도록 했다. 學校興은 守令七事로 수령의 교육현황을 관찰사가 임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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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7] 觀海閣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가좌동 장고개길에서 번지기나루터(조선말 이양선의 잦은 출몰로 군인들이 보초를 서던 곳)가는 길 중간에 있는 곳으로 일제강점기時 임경업 장군 사당을 철거할 때, 직접 사당 기와를 마차를 가지고 가서 싣고와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이곳 바로 앞이 바닷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인 ‘주안염전’이 있던 곳이다. 교육자 심재갑 선배는 인천부평동초등학교 6회 졸업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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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6] 깍까산

빅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에는 깍까산이 2군데 있다. 청천동 장수산에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軍用으로 산을 깍까 낸 깍까산과 다른 한 곳은 함봉산 부평도서관 뒷 산이다. 애스컴시티 조성과 군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채석을 했던 곳으로 너무 깍까낸다 하여 ‘하도해도 깍까산’으로 이름을 붙였다. 당시 일본군이나 미군에 의해 부평 지형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캠프헤이즈의 미512 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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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5] 드림보트에서 다시 음악을 듣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2015년 부평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음악ㆍ융합도시로 선정되고 2021년 문화도시 부평이 되었다. 1960~70년대 부평은 수많은 뮤지션들의 성지였다. AFKN 미국 방송을 듣고 다음날이면 뮤지션들이 직접 악보를 그려 연주할 정도의 실력있는 음악인들이었다. 그래도 실력에 따라 플로어ㆍ하우스ㆍ오픈 밴드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미8군 무대에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은 당대를 풍미했다. 주한미공보원USIS에서 분기별로 오디션을 보고 실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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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4] 굴포천 환경정화는 우리가 자원봉사하여 깨끗이 해서 후손들에게 남겨주겠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굴포천ㆍ청천천ㆍ산곡천ㆍ항동천ㆍ부개천 등에서… 졸졸졸 물 흐르는 곳… 1920년대 고유섭의 ‘경인팔경’ 詩에 나오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부평이었다. 예전에 ‘물의 나라였다.’ 굴포천에서 농사짓고 여름엔 물장구치고 물고기와 같이 놀던 곳, 잠자리 잡고 메뚜기 잡던 곳, 겨울엔 썰매 타던 곳…用水ㆍ樂水ㆍ益水로서 부평사람들의 친수공간이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냄새나고 더럽다고 복개하여 죽은 하천이 되었고, 수많은 노력끝에 40~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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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3] 같은 장소ㆍ다른 시간, 신촌로의 변화

빅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新村에 마을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7년 부평공원에 홍중공장 (히로나까상공)이 들어오면서부터 일것이다. 193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공업화 정책이 광업에도 일본 대자본이 활발히 전개된다. 광산붐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부평공원 자리에 광산용 기계와 화차를 생산하는 홍중공장이 들어선다. (1911년 말 796개 광구가 1937년에는 6,513개로 증가) 광복이 되고 애스컴시티가 들어오면서부터 1950년대에는 미군클럽이 애스컴시티 인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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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2] 지하호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엔 ‘새우젓토굴’ 이라 불러왔다. 친구들과 놀이터로서 역활을 했을 뿐이고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도쿄육군제1조병창ㆍ부평조병창의 실포내지는 소총 제조공장 이설(옮겨 설치함)하기 위해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조선인 학생들을 동원하여(通年動員) 만든 곳이다. 많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지하호ㆍ지하시설은 함봉산 일대 27곳, 캠프마켓 일대 10곳, 일신동 평양제2제조소 일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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