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 부개산을 경찰학교 뒷산ㆍ금마산으로 불렀고 팔각정엔 자리에는 넓직한 운동장과 근처에 약수터가 많아 놀이터로서 적합했다. 인천가족공원내에 있는 부개산 정상에 포대 흔적이 2개가 남아 있다. 일본군이 미군 폭격기에 맞설 방공부대자리이다. 부평조병창이 있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말기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자료 ‘대동아전쟁 17방면군 축성시설배치도’를 바탕으로 지도위에 필사해보니 ‘야전진지’ ㆍ ‘병기격납동굴500 m2’ (함봉산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71] 부평의 고개길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사람이 모여 살게되면 마을이 되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것이 길(路)이지요. 한남정맥 분지로 둘러쌓인 부평에는 수많은 고개가 있어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약 1,000여 년 이상된 길(路)만 소개하겠다. 예전에는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에 마을이 생기고 단지 말ㆍ소ㆍ 사람들이 이용하며 길이되었지요! 예전에는 자주 볼 수 있었던 돌무더기 서낭당이나 상여집 등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70] 부평ㆍ십정ㆍ청천농장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에는 한센인들이 운영하는 농장 3곳이 있었다. 한하운 시인이 1949년12월30일,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수도권 일대 한센인들 70여 명과 함께 인천가족공원 옆 골짜기로 들어와 정착,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치료 후, 음성 판정을 받아 완치된 그들은 농장 운영(닭ㆍ돼지ㆍ소 등을 사육)을 하였다. 문둥병 또는 나병환자라 사회적 편견에 의한 차별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9] 녹청자 도요지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인천시 부평구ㆍ서구ㆍ계양구ㆍ부천시 일원은 오래전부터 같은 행정구역으로 한 동네였다. 지금의 서구는 조선시대말까지만 해도 승학산 북쪽을 모월곶면, 남쪽을 석곶면으로 하는 부평도호부 소속의 행정구역으로 부평의 15개면中 가장 인구가 많은 큰 동네였다. 부평의 고대 邑治인 古縣里(=고련이, 현 검암동 상동마을 인근)가 있어, 부평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으로 가는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8] 부평서초등학교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전선에 무기를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1941.5.5. 부평에 인천일본육군조병창을 개창한다. 이를 전후로 조병창 인근에는 일제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 납품 공장들이 속속 건설되며 부평은 공업 지대로 변모한다. 따라서 일본인들과 조선인 근로자들이 밀려들면서 주택지와 학교ㆍ시장 등 도시 편의 시설이 부족하여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거 1941년부터 소화토지구획정리사업 이 실시됩니다.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7] 외국인 묘지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인천가족공원에는 9,330여 기(2020년 기준)의 외국인 묘지들이 있다. 1883년 인천의 개항과 뿌리를 같이 한다. 인천역 인근에 있던 북성동 외국인 공동 묘지의 첫 매장자는 미국 상인 조지 버트 모트로 1883.7.10.이다. 1884년 내동에 청인묘지인 義莊地를 시작으로 1903년 율목동에 일본인 묘지, 1912~1958까지 부처산에, 1965년에 인천 청학동 외국인 공동묘지로 이전. 그리고 2017년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6] 조병창기능공양성소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며칠전 지인에게서 위치를 알려 달라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76년 전, 1950년에 미군이 자대로 배치받은 곳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계양산이 보이고 좌측 상단에 굴뚝 2개 있으며 하얀색 2층 연립들이 보인다. 사진은 산곡동 제3보급단 남쪽에서 북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빨간 화살) 사진 찍은 년도는 1951~1952년도로 보인다. Ascom City중 Camp Grant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5] 부평동초등학교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0년대에는 현 부평구 지역에는 부평동초등학교(1940년), 부평서초등학교 (1941년), 소화고등여학교 (박문여자고등학교 전신, 1941년) 3개 학교가 있었다. 부평동초등학교는 90년 전, 1936년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 분교로 시작하였다.(1~2년제) 석계 장석우의 후원 아래 1940.4.24. 현 위치에 개교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봄에 전기화재로 부평동 초등학교는 전소 한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는 열망에 아래 전쟁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4] 부평경찰서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사진은 1957년 Morton이 인천북부교육청 입구에서 (구)부평경찰서를 보고 찍은 시리즈中 하나이다. 당시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지금 보아도 여성의 세련된 옷차림은 미군 사진기에서 보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었나 보다. 부평경찰서는 1945.10. 21. 국립경찰서 창설과 동시 개서한다. (1945.9.8. 인천항에 상륙한 미24군은 부평에 애스컴시티가 1945. 9. 16. 주둔) 1948. 12.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2] 부평수리조합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의 지형적 특성에는 계양산과 굴포천이 있다. 1925년 굴포천 유역은 일제의 산미증산정책에 의해 부평수리조합이 생기고 한강유역에 제방을 만들고 동ㆍ서 간선수로와 양수장을 설치한다. 1925년 이전의 굴포천과 한강은 연결되어 있어 農船이 다녔으며 서해바다의 밀물이 하루에 2번씩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그리고 굴포천은 한강보다 수위가 4m 이상 낮은 저지대로 자연배수가 어려워 상습적인 수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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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