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사진은 1957년 Morton이 인천북부교육청 입구에서 (구)부평경찰서를 보고 찍은 시리즈中 하나이다. 당시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지금 보아도 여성의 세련된 옷차림은 미군 사진기에서 보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었나 보다. 부평경찰서는 1945.10. 21. 국립경찰서 창설과 동시 개서한다. (1945.9.8. 인천항에 상륙한 미24군은 부평에 애스컴시티가 1945. 9. 16. 주둔) 1948. 12.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2] 부평수리조합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의 지형적 특성에는 계양산과 굴포천이 있다. 1925년 굴포천 유역은 일제의 산미증산정책에 의해 부평수리조합이 생기고 한강유역에 제방을 만들고 동ㆍ서 간선수로와 양수장을 설치한다. 1925년 이전의 굴포천과 한강은 연결되어 있어 農船이 다녔으며 서해바다의 밀물이 하루에 2번씩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그리고 굴포천은 한강보다 수위가 4m 이상 낮은 저지대로 자연배수가 어려워 상습적인 수해가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60] 탄구덩이
박명식 이사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0~50년대에 경인고속도로 부평톨게이트 북쪽으로 서운동 (도두머리) 방죽둑 밖의 배수로 섶의 저지대 논바닥 (590여 년 전 우희열의 長省堤로 추정)에 토탄(土炭)층 있어 한동안 나무 연료 대신 채취하여 사용. 1925년 굴포천에 부평수리조합의 제방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한강이 범람하면 강원도 일대로 부터 큰 나무 등이 급류에 밀려 서운고등학교 일대에 부유물이 쌓이고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7] 중봉 조헌, 고양골/율도2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도호부(부평군)에는 조선 중기 문신ㆍ유학자이자 경세사상가ㆍ의병장으로 중봉(重峰) 조헌(趙憲)에 관한 2가지 이야기 전해 오고 있다. 지금의 계산1동 경인교육대학교 정문 앞 일대를 고양골, 고양꿀 또는 지래골이라 불러왔다. 이렇게 불러 온 것도 선조 10년(1577) 이후 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아늑한 골짜기에 산림이 우거져 인가와는 동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1. 고양골이라 부르게 된 것은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6] 눈썰매 타던 부평1동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 부평1동은 사진에서 보듯이 언덕진 곳(부개산 줄기가 흘러내려온 언덕)으로 북인천 우체국 언덕에서 썰매를 타면 부평서초등학교 근처까지 내려 갔다. 대한극장 자리에는 방공포부대가 있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로 진격하던 中 원통고개전투가 있었고, 해병대원들과 인민군들 간의 부평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 개발이 되면서 대한극장에 있던 산은 토취하여 시장의 낮은 지대인 湖沼를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5] 산곡동 비행장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한국전쟁 中에 원적사거리에는 비행장이 건설된다. 1953년 봄까지는 캠프마켓 야구장에 비행장과 헬기장 있었다. 1953년 5월경부터 비행장 가설 이ㆍ착륙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빨간포대기에 애기를 업고 가는 여인이 있는 곳이 원적로와 안남로의 사거리로 인천북부교육문화센터가 있는 곳이고, 사진 좌측 지붕 위 ELEV.60FT (고도60피트 유지= 약18m) 쓰여진 곳이 비행기 정비소 지붕이다. 앞쪽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4] 항공사진으로 본 주안염전과 율도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6년경 항공사진으로 본 인천 앞바다의 주안염전 (빨간 화살)과 율도 (파란 화살)를 볼 수 있다. 율도는 19세기 한 때 인천의 내항으로 세곡선 창고를 만들고,(마을 이름을 ‘원창동’ 이라 했다 – 원래 창고가 있던 마을) 마차를 이용하여 아나지고개를 통해 마포 경창으로 쌀을 실어 날랐다. 한남정맥 분지로 둘러쌓인 부평을 비교적 자세히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51] 번지기나루터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말 잦은 이양선의 출몰로 군인들이 番을 섯던 곳(보초를 서던 곳)에 나루터가 생겨 서곶ㆍ계양ㆍ부평 사람들이 배다리시장ㆍ채미전거리에 농산물을 팔러가거나 생활용품 구입하러 자주 이용했으며, 학생들이 통학하던 나루터였다. 2군데 번지기나루터가 있었다. 인천교와 가까운 윗나루와 하류에 아랫나루가 있었으나 비정되어 있다. 아마도 자주 이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인천교가 1958년에 생기면서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9] 창이ㆍ단이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산곡동 장고개에는 현재 ‘제3보급단’이 위치하고 있다. 사령부 본관 입구에 ‘창이와 단이 소나무’가 있어 옛 부대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1945년에 부평조병창을 중심으로 부평에 Ascom City의 7개 부대가 들어선다. 그 중 하나인 Camp Grant 미군부대가 이곳에 들어온다. 닉슨톡트린으로 1973년 6월30일 애스컴 시티가 해체되면서 캠프그란트도 철수한다. 그리고 캠프그란트 자리를 한국군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8] 부평향교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인천에는 향교가 4군데가 있다. 교동향교(우리나라 최초)ㆍ강화향교ㆍ인천향교ㆍ부평향교 이다. 부평향교는 ‘前堂後廟’ 방식의 배치 구조로 조선말까지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의 공립학교 역할과 현재는 유교성현들의 제례를 지내고 있다. (명륜당 정면 5칸, 대성전 정면 3칸의 구조) 국가에서는 관학으로 學田과 책ㆍ노비 등을 지원, 종6품 교수와 정9품 훈도를 두도록 했다. 學校興은 守令七事로 수령의 교육현황을 관찰사가 임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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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