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인천이야기’에서 발췌

[박명식, 부평지역사 15] ‘캠프마켓 이야기’ (8) – 김포선 철길은 사라졌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과 부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최근 경기도였던 시절까지 한 동네였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경기도 부천시로 나뉘지만 예전에는 같이 농사짓고 한 우물을 먹던 농경문화의 한 뿌리를 가진다.

오늘 이야기는 부평 캠프마켓을 벗어나서 인근 지역 미군부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굴포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서운교를 지나 부천체육관과 약대공원 앞을 지나던 김포선 기찻길이 있었다.

김포선 철도는 지금의 부천역(당시 소사역)과 김포공항 사이를 운행했던 사라진 철길로 그 끝에는 오쇠리 마을이 존재했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에 의해 건설 된 군용철도로 1951년부터 1980년까지 운행했다. 주로 미국에서 김포공항으로 파견되는 일부 군인들과 군수물자를 운송했다. 지금의 김포공항 자리는 1939년 일제강점기시대 세워진 일본군의 군용활주로였고, 광복 후 미군부대가 주둔한다.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캠프 머서(Camp Mercer), 캠프 아일라(Camp Eiler), 캠프 리치먼드(Camp Richmond)의 3개의 군부대가 있었다.

부평의 캠프마켓(Camp Market)은 주로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군수물자의 보관창고(Depot)와 보급, 그리고 보충대의 기능을 했다. 창고(Depot)의 역할을 하던 캠프마켓과 캠프머서(미8군 제44공병대대 소속) 카투사와 미군들은 정기적으로 운동과 훈련 등으로 상호 교류도 하였다.

캠프마켓의 통신대는 이곳 김포공항 인근의 미군부대 통신시설도 관리하였다. 허허벌판인 이곳에 1960년대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영외클럽이 3개나 있었고, 오쇠리의 마을 중심이었던 오쇠삼거리는 당시 부천군에서 가장 번성한 곳 이었다고 한다.(부천문화원-“부천문화” 72호)

옛 소사역에서 출발한 김포선은 계남고등학교까지 커브를 돌아 서북쪽으로 동부간선수로를 끼고 약대동, 삼정동, 오정동을 지나 중동과 대장동 벌판을 가로지르던 열차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본다.

네이버 ‘인천이야기’에서 발췌

캠프머서 부대 아래로 지나가는 점선은 1908년 노량진 정수장 – 약대동 – 부평(부평동초 뒤 정수펌프장) – 장고개 – 주안갯골 번지기 나루터 – 송현동 수도국산(水道局山)까지 가는 수돗길로 한국 최초의 상수도선이다. 그리고 폭4m의 길이 생긴다.

우리는 이를 ‘수도길섶’ 또는 ‘장고개길’이라 불렀다.

지도 사진은 부평역사박물관에서 발췌

이 길에는 1920년대에 용산에 주둔했던 일본군 20사단 조선주차군이 포사격 훈련을 한 병참(兵站-현 산곡동 우성아파트 115~116동 인근으로 이 근처는 친일파 정미칠적 송병준 땅이었다)이 있었고, 부평5동에 ‘고니샛말’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을 한 미해병 5연대 2대대는 원통이고개 전투 뒤, 이 길로 해서 김포공항과 한강 행주산성으로 해서 서울로 가는 진출로 중의 하나였다.

김포공항과 캠프머서Camp Mercer) 미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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