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포착] 100만 촛불, ‘타는 목마름으로’

취재:이정민 기자_m924914@incheonpost.com

응답했다 1987’-박근혜 하야의 불길이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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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보이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으로 속속 국민들이 모여 들었다. 저 먼 대학로에서, 숭례문에서, 경복궁 사거리에서 가두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1987년 시민대항쟁·노동자대투쟁의 데자뷔였다. 이날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한 목소리로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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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반복된다. 바보 같은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국민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권리위에 잠을 자지도 않았다. 3살배기 아가도, 까까머리 중고생도, 아재와 아지매도, 백발 노인까지 너나없이 어깨 걸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마다 피켓 물결이 뒤덮였다. ‘국민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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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으켜주고 떠밀어주었다. 동쪽에서 대학생 군단이, 서쪽에서 청소년 군단이, 남쪽에서 노동자 군단이, 북쪽에서 시민군단이 하나의 물결로 춤췄다.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100만 촛불은 어둠을 모두 걷어 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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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잔잔한 감동이 넘쳐난다. 거대한 행렬이 지나간 자리 뒤에 한 여성이 소리 없이 쓰레기를 줍고 있다. 빌딩 안전요원도 높은 부스에 오른 시민의 부상방지를 도모한다. 자원봉사로 나온 시민들은 각종 먹을거리와 커피를 기꺼이 나눠줬다. ‘아름다운 나눔, 큰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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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의 젖은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떼를 지어 움직이는 구두소리가 ‘바위처럼’의 운율을 맞춘다. ‘가자 청와대로!’ ‘오라, 민주주의여’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를 끌어 내리자’ 등등. 모두의 가슴 속에 울분의 슬픔이 새어 나온다. 셀 수 없는 깃발의 펄럭임은 어느새 태극 물결로 바뀌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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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위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 (창비,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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