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씨 별세…항년 81세

이기현 기자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씨가 9일 오후 2시 30분께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이날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에 다녀오던 중 쓰러져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졌다. 최근까지 지역행사를 진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인은 1944년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5세 때 겨우 걸음마를 했을 정도로 약골이었다. 병약한 고인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삼촌이 건넨 아령이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본격 보디빌딩을 시작해 ‘미스터 대전고’를 수상했고, 고려대에 진학한 후엔 거푸 ‘미스터 고대’에 등극하기도 했다. 고려대 재학 내내 응원단장으로도 맹활약했다.

데뷔는 1971년 CBS 기독교방송, 이후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에 보조MC로 나서며 다부진 외모와 매끈한 진행으로 눈길을 끌었다. KBS 어린이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하면서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고 인기를 누렸다.

고(故) 송해 선생에 앞서 KBS ‘전국 노래 자랑’의 사회(1985~86년)를 맡기도 했다. 1989년부터 7년 동안 MBC 병영 위문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를 진행했다. “뒤에 계신 분은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고향 앞으로” 등의 유행어를 만들며 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의 횡령 의혹은 세간에 큰 충격이었다. 고인이 설립한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단체 ‘뽀빠이 훼미리’와 불우아동을 돕는 ‘어린이보호회’(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등에서 횡령을 했다는 이유로 누명을 썼다가 3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고인은 미국으로 건너가 여행사 관광가이드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아내의 설득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시골에서 논밭일을 거들며 일당 2만 5000원을 벌었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한 가장의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방송에 복귀한 후엔 지방 방송국의 여러 음악프로그램 MC를 맡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공중파 TV에도 간간이 얼굴을 보이며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2019년엔 유튜브 채널 ‘뽀빠이 이상용TV’를 개설해 일상을 담은 영상을 수차례 공개했다.

외출할 때마다 1000원짜리 100장을 지갑에 챙겨 폐지 줍는 어르신께 용돈을 드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방송에 소개되는 등 선행도 꾸준했다. 가난한 환우를 위해 거금 1,800만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쾌척한 일화도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1호실에 차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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