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쓰는 사람의 손
화성작가회의에서 문학상을 제정했다. 회원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상금을 수여하는 행사에 축사를 부탁 받고 귄터 그라스의 에칭화 중 ‘글 쓰는 사람의 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귄터 그라스는 글을 쓰기 전에 그림을 먼저 그리기도 했는데 그림은 글과 상호텍스트적인 교감 속에 상징적인 메시지를 구현한다.
“사람들이 설사 우리들을 돌로 치고 증오로써 파묻어 버린다 해도, 그래도 펜을 든 손이 돌 더미를 헤치고 불쑥 올라올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우리들이 여기 이 지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비록 찰나에 불과하지만, 모든 시는 그것이 생의 법칙에 따라 써진 우리들의 정신의 산물인 한에 있어서는 영겁의 일부로 동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이 종료된 뒤 패전국 독일의 작가들이 모인 ‘47그룹’의 한 멤버였던 귄터 그라스가 한스 베르너 리히터에게 받친『텔크테에서의 만남』은 1947의 9자를 뒤집어 1647년 장미전쟁이 끝난 뒤 전국각지에서 모인 시인들의 가상 합평회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9와 6이 거울처럼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시대를 초월한 작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47그룹’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이 바로 에칭화 ‘글 쓰는 사람의 손’을 변주한 ‘펜을 든 손’이다.
그림 속엔 돌밭으로 가득 찬 대지를 뚫고 올라온 손이 있다. 나무를 닮은 손은 우여곡절을 보여주듯 거친 마디와 주름에 휩싸여 있으나 또한 바람에 흔들리는 깃털과 함께 한다. 비상하는 깃털을 쥔 대지의 뿌리. 그가 바로 찰나를 넘어서는 영겁의 정신이다. 정기적으로 합평 모임을 이어가는 화성작가회의의 올해 수상자는 전비담 시인. 무명의 귄터 그라스도 ‘47그룹’의 합평 모임에 제출한『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지역의 자생적인 작가 모임을 활안(活眼)으로 눈여겨봐야겠다.
음식 스토리텔링
식품기업에서 공모한 에세이 심사를 했다. 미식가인 안도현 시인과 함께 한 심사의 과정 자체가 미식 기행과 같았다. 어떤 요리엔 아름다운 추억담이 있고, 어떤 요리엔 삶의 애환이 엿보이며, 또 어떤 요리엔 몇 대를 이어가는 가족애가 있다. 개중엔 레시피대로 따라 해보고 싶은 매혹적인 조리법들도 있었다. 음식이야말로 창조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음산한 내일의 예측에 풀죽은 나는, 마들렌의 한 조각이 부드럽게 되어가는 차를 한 숟가락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홀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고, 곧바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함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 과자 한 조각은 ‘기계적’인 습관이 작동하는 음식에 머물지 않고 소스라치는 영혼의 경험을 하게 한다. 삶의 무상함과 유한성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영혼의 음식. 함께 했던 사람과 장소 그리고 반복할 수 없는 고유한 시간이 함께 하는 음식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질 때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서 작동한다.
한국문화 예술이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한 매혹을 뿜어내고 있는 이 시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을 보며 음식문화의 스토리텔링 작업이 더욱 드넓은 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끝)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