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62년 부평출장소 시절, 부평동이 부평1동ㆍ부평2동ㆍ부평3동으로 분동 된다.
부평4공단도 없었고, 부평대로도 없었다.
경인고속도로도 없었다.
(1942년 건설된 국방로-영인로의 비포장도로만 있었다.)
대한제국 말에 馬場面 山谷里(=뫼끝말) 이었으나 1940년 4월 1일 인천부에 2차 편입이되며 白馬町 – 하쿠바쬬로 개칭되고 광복이 되면서 町이 場으로 변음되어 ‘백마장’이라 잘못 불려지게 된다. 청천동을 마제이(馬場)라 부르고 마장면사무소가 있었다.
조선시대 馬場面은 청천동을 중심으로 산곡동과 효성동(=새별이)까지 초지무성 벌판으로 ‘마장뜰’이 있어 국영목장(牧場)으로 즉, 馬場이란 지명이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장현(場峴=장끝고개=장고개=장끝말=場이 끝나는 마을)은 1941년 조병창 기능공양성소가 들어오며 마을은 군용지로 수용된다.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