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민주’라는 말을 능멸하고 있다.”-홍세화(2020.2.14)

by 홍세화(“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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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만 빼고

민주당에 민주주의자가 없다.

며칠 전 임미리 교수의 경향신문 기고글 “민주당만 빼고”를 읽고 나서 나는 거기에 자유한국당을 얹어 “‘민자’ 빼고”를 4월 총선 구호로 하자고 트윗에 올렸는데, 오늘부터 다시 “민주당만 빼고”로 원 위치시킨다. 임미리 교수와 경향신문을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하는 해프닝을 벌인 민주당에 대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정치적 응수다.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인 표현의 자유는 정확히 말해 “반대 의견을 피력할 자유”다. 찬성 의견만 용인되는 사회를 우리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른다. 오늘 “더불어 민주당”의 ‘더불어’는 오로지 지지자에게만 해당된다. 그들은 자유한국당보다 더 배타적, 불용인(앵톨레랑스)의 정치집단이 되었다.

권력을 장악하니 세상이 만만하게 보여서일까, 민주당이 오늘 이처럼 “막 가자는 거지요!”가 된 것은 왜일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애당초 독선과 오만에 대한 성찰을 없앴는데, 그 위에 별 노력 없이 집권까지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상 그들의 태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태블릿 피시가 세상에 알려진 뒤 국민이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면서 거리에 나섰을 때 뒷전에서 눈치를 살피던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최근에 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가 SNS 상에서 “물대포” 비난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번 임미리 씨 고발 해프닝을 보면서 떠오른 일이 있다. “이명박근혜 때 뭣도 한 게 없는 자가 민주주의 위기를 말하냐”는 힐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도 되겠다. 나는 박근혜 정권 당시 한겨레 지면에 “박근혜 정권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차례 연속으로 기고했다. 4-16 세월호 참사 직전이어서 아직 박근혜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았던 때였다. 그 칼럼을 작성할 당시 내 뇌리에는 박근혜 정권한테서 ‘고발당할 수도 있겠구나’와 같은 걱정은 티끌만치도 없었다. 칼럼 내용이 변변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민주당만 빼고” 정도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우자”고 썼던 나에게, 그리고 한겨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한겨레 칼럼을 쓰면서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요즘의 일이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에게 군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마다하지 않았던 장 폴 사르트르를 단죄해야 한다는 측근에게 드골이 “그도 프랑스야!”라면서 만류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일면에는 사르트르 자신이 강조했던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하기야 그런 존중을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수뇌부에게 언감생심 바랄 수 있겠는가마는…

그런 불온한 눈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민주당 안에 민주주의자가 보이지 않는다. 공수처 설치 반대 소신을 밝힌 금태섭 의원에 대한 정치적 린치 행위가 벌어져도 이를 제어하는 민주주의자가 없다. ‘문재인 씨’라는 발언을 문제 삼아 떼거리로 아우성칠 때 점잖게 나무랄 줄 아는 민주주의자도 없다. 선거를 앞둔 시점임을 강조하면서 임미리 씨를 고발했던 민주당인데, 그 민주당 안에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명이든 석명이든 자신의 입장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발언할 줄 아는 용감한 민주주의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 스스로 지지자들뿐만이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면, 국민의 ‘일반의지’를 이처럼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는 일이다. 임미리 씨도 개탄했듯이, 그것이 조국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마음의 빚’보다도 가벼운 일인가!

거듭 묻건대, 자유한국당이나 조중동 등 수구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세력이 누구인가? 선거 개입에 동원된 청와대 비서실의 인물들인가, 아니면 그런 비위를 비판하는 시민들인가? 정치 검찰과 기레기 언론의 말을 믿느냐고? 공소장을 찬찬히 읽어봐라. 한국어 독해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증빙이 없다면 꾸며낼 수 없는 범죄혐의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시절을 살고 있다.

자유한국당 세력이 오랜 동안 ‘자유’라는 말을 능멸해왔다면, 민주당은 ‘민주’라는 말을 능멸하고 있다. 그런데 전자는 ‘지는 해’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민주당만 빼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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