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평문화권의 복권을 꿈꾸며

글쓴이: 이장열 편집인

부평평야, 방축, 계양산, 임꺽정, 박수, 대동굿… 부평풍물축제의 근원을 찾아야

부평풍물축제2016

지난 10월 부평풍물축제가 20주년을 맞이해 부평역 앞 8차선 도로 막고 신명나는 판을 벌리고 마무리됐다.

도로를 막고, 풍물을 두드리는 행위를 20년 이상 가능하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지금쯤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현재 진행하는 사람들은 이제 되물어야 할 시기가 맞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는 이는 별로 부평 바닥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다.

부평풍물축제 원년 기획자인 임종우 화가는 20주년을 맞이하는 축제를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아쉬움을 피력하는 자리에서 편집인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풍물축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20년 동안 찾는 노력들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부평풍물축제는 현재 상태에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근원 찾기에 지역의 연구자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뜸도 했다. 부평 들판에 많았던 방축(큰 저수지)에 그려진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계양구에 위치한 까치마을에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 박수무당패들이 대동굿을 펼쳤다는 기억과 사진 자료가 남아 있다고 임종우 화가는 말을 이어갔다.

그 자료들과 그 기억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부천의 역사에 현재 편입되어 있다.

평야와 같은 부평 들판에 큰 저수지가 여러 존재했기에 땅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한 경제구조에서는 부평은 조선시대부터 중심 지역이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무속행위들이 번번히 국가차원에서나 사족들 차원에서도 펼쳐졌을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이른바 대동굿을 펼친 부평 들판에서 박수무당이 등장과 악사들, 그리고 굿에 앞서 펼쳐진 놀이에 그 주변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바로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동굿은 이른바 민중적인 놀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놀이처럼 격식이 얽매이지 않은 것이 굿판이다. 장소도 개방된 곳에서 굿이 펼쳐지고, 민중들이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축제의 격에 맞는 것이다.

또 하나 푸평풍물축제가 그 근원을 따져 들어가보면, 계양산이 우뚝 서 있다. 벽초 홍명희 소설 ‘임꺽정’에서 꺽정이 계양산 근처에 와서 무술을 연마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의적 활동을 한 장소이다.

소설 속 인물 임꺽정이지만, 조선시대 사료들에는 계양산 근처에 도적떼들이 우글거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계양산은 황해를 나아갈 바다와 인접해 위치하고 있고, 한양에 최단거리에 갈 수 있는 길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임꺽정이 세상의 변혁을 꿈꾸기 위해 계양산 근처에 와서 무술을 연마한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계양산, 임꺽정, 부평들판, 방축, 박수, 까치마을, 대동굿은 다들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연결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 국가로부터 이 의미망들을 단절시켜 버렸다. 국가 행정의 편의에 따라, 부평이라는 이름을 사라져 버렸고, 북구이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을 수십년 동안 사용하는 아픈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경인고속도로는 부평을 갈라놓으면서 부평은 계양과 부평으로 둘로 분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올해로 22년이 됐다.

행정단위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계양산, 임꺽정, 부평들판, 방축, 박수, 까치마을, 대동굿을 한데 아우르 품었던 부평을 기반으로 이뤄진 문화유산들은 이제 다시 묶어세우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권리로서 부평문화권의 복권이다.

부평문화권의 복권은 지역의 연구자들이 이제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부평문화권의 복권은 부평풍물축제의 뿌리와 동력을 찾아주는 의미도 있지만, 당장 계양과 부평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다시 이어주는 새로 의미의 축제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부평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계양산, 임꺽정, 부평들판, 방축, 박수, 까치마을, 대동굿을 다시 잇는 기획에 이제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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