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898년, 그리고 2016년 촛불

글쓴이: 이정민 사회부장_m924914@naver.com

촛불 집회의 모태가 된 장작불 집회..118년전 장작불 집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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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8년 전 장작불 집회가 있었다. 근대 최초의 정치사회 단체인 독립협회(1896.7.2)와 연관된다. 이들이 주체한 만민공동회 시위 때 최초로 등장한 철야 시위이다. 작금의 촛불 집회의 모태인 격이다.

1898년 대한제국에 대한 러시아의 식민지 속국화 침략 정책이 본격화됐다. 민중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대한제국은 자주 독립의 정신 등을 모두 잃고 반식민지 상태에 떨어질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서재필·윤치호 등을 비롯한 독립협회 간부들은 기존 계몽 운동을 정치 운동으로 전환시킬 것을 결정했다. 독립협회의 이상재·이건호 등은 1898년 2월 21일 구국 정치 운동을 선언하는 강경한 상소문을 고종에게 올렸다.

독립협회는 1989년 3월 10일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제정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배제하고 자주 독립을 공고히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날 만민공동회에는 서울 시민의 약 17분의 1인 1만 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운집해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했다. 이들은 자주국권, 자유민권, 자강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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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연속 만민공동회 개최, 3차 만민공동회는 19일 연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최장 42일 간 장작불을 피우고 철야 투쟁을 진행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과 연사가 자주 독립권 수호를 위한 확고한 결의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118년 지난 2016년 11월 26일 만민공동회의 정신을 잇는 200만 촛불 집회가 열렸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강추위 속에서도 차가운 아스팔트를 이불삼아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불거진 대통령의 국민모독, 헌법모독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독립협회의 당시 식민지 상황과 작금은 비교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굳이 평행이론을 붙이자면 독재자 박정희, 국정농단 박근혜로 이어지는 권력놀음을 중단시켰다는 것. 작금 민중들의 분노도 당시와 똑같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박근혜라는 저주받은 망령에 의해 자주·민주·통일의 정신 등을 모두 잃고 반독재의 상태에 떨어질 위기에서 겨우 기사회생된 양상이다.

200만 촛불과 5000만 국민은 명령하고 있다. 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진 박근혜 게이트의 주범인 대통령의 하야, 진상규명, 새누리당 해체를 말이다. 더불어 친일과 독재의 양산으로 뒤덮였던 대한민국의 앙시앙레짐과 결별할 것을 명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대개조를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시스템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하고 있다. 그것이 촛불로 이어지고 장작불로 활활 타오르려 하고 있다.

1898년 독립협회는 다음과 같은 기치를 드높였다.

“독립문이여 성공하라. 그래서 다음 세대들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하라”

2016년 독립정신을 이어받은 후배들인 선조들에게 답한다.

“광화문이여 성공하라. 그래서 미래 세대들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하라”

26일 광화문은 1분 동안 어둠에 갇혔다. 그리고 다시 서로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빛으로 어둠을 걷어 냈다. 그 노래 가사가 맘속을 계속 울린다. 국민은 반드시 이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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