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2] 삼릉(三菱)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편문화원 이사)

삼릉은 미쓰비시제강공장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살던 곳입니다.
당시 주거시설마저도 조선인(10ㆍ6ㆍ4호 장택)과 일본인에게는 (단독ㆍ2호)차별을 두었습니다.
1940년 4월 1일, 부평이 인천부에 편입되고 부평조병창 확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시공하게 되었다. 이 때 일본군은 일본인 토건업자 다다구미(多田組)ㆍ시미즈구미(淸水組)ㆍ다마보구미(玉操組)ㆍ간또오구미(關東組)ㆍ하자마구미(狹間組) 등 5개 업체에게 5개 공구로 나누어 하도급 공사를 시행하였다.
이에 필요한 인력은 ‘국가총동원령’을 공포하여 조선인들을 근로보국대란 명칭으로 강제 배치시켜 노무에 종사토록 했다.
1942년도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건축자재가 부족하여 조선인 거주지였던 장택(사택)은 대나무와 흙으로 대충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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