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87년 6월 10일 오후 6시. 마산 3·15의거탑에 경찰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근처 어시장에서 경남대, 창원대 학생들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며, 호헌 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마산 3·15의거탑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3·15의거 로터리에서 경찰들에게 저지를 당하면서 6월항쟁은 시작됐다. 87학번 1학년 정외과 꼬맹이였던 저도 그 대열 두번째에 낑겨 있었다.
87학번 1학년이 뭘 알았겠나. 그냥 대통령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큰 골간은 1인 1표 투표권이다. 1987년 6월까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국가가 만든 기구에서 자문위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으니 87학번 1학년의 감수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였다.
87년 4월 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자 전국의 민심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라는 구호로 모아졌다.
87년 6월항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 되는 1인 1투표, 비밀투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모아낸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게 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도 칭할 수 없는 독립변수다.
87년 6월항쟁은 전두환 체제 붕괴가 아니라, 국민 기본권인 투표권과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은 의미가 가장 크다.
그리고 87년 6월항쟁으로 꽃피워진 자유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 어언 39년이 지났지만, 최근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부정선거 논란으로 6월항쟁이 남긴 국민 투표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87년 6월에 전 국민이 요구한 것은 1인 1투표권이었다.
87학번 1학년이었던 발행인이 마산 거리에서 외치며 쟁취한 투표권이 이렇게 허술하게 무너져도 되는지….
바로잡아야 한다. 미래 세대들을 위해서도.
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