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平 文化 이야기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1] 미군 손지도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인천항에 상륙한다. 경인로를 통해 인천-부평-서울로 진출한다. 이를 전후하여 자체적으로 지도를 만들기 전 직접 손지도를 그려 초기에 지역간 이동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SALT FLATS : 주안염전 – VISIBLE FROM SEA : 계양산 – PROPOSED AIR PORT : 비행장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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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0] 지절방[志節坊]-디젤사택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중ㆍ고등학교 자리에 일제강점기時 (1943년경) 디젤자동차 부평공장이 세워지고, 1940년경 세워진 국산자동차 부평공장은 산곡동 부평 전신 전화국 일대이다. 수도펌프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국선이 지나간 곳으로 장고개로 수도물을 넘기기 위해 모터펌프의 힘을 이용. (부평동초등학교 옆, 하얀 건물) 공보관은 현 보건소 자리에 있었고, 북구청이 신축되어 들어서고 공보관은 1969년 부평4동 새시장에 새로 지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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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9] 나무서리=목상동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천자문에 ‘노결위상(露結爲霜)’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된다. 즉 이슬이 내리고 머잖아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온다. 계양산 북사면에 지금의 목상동을 ‘나무서리’라 불렀다. 북사면 무성한 나무 사이 마을로 일조권이 적어 나무에 서리가 걷힐 사이가 없어 ‘나무와서리(木霜)의 마을’이라 했다. 아랫마을을 ‘눌지마을’로 나무소리(수소-樹蘇)마을이 변음되어 ‘나무서리’ 로 불렀다. 황어향을 다스리던 호족 이희목이 고려왕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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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7] 타박타박 걸으며 보아야 하는 예쁜 도시 부평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은 중세로부터 최근까지도 전략적 요충지로 군사도시인 ‘富平都護府’였고, 1965년부터 한국수출산업4단지가 조성된 산업도시이다. 그리고 1926년 우현 고유섭은 연시조 京仁八景의 詩를 통해 부평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부평하경(富平夏景) 청리(靑里)에 백조(白鳥) 나라, 그 빛은 학학(鶴鶴) 할시고 허공중천(虛空中天)에 우줄이 나니 너뿐이도다. 어즈버 청구(靑邱)의 백의검수(白衣黔首), 한(恨) 못 풀어 하느라.” 100년 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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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6] 제3빵공장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분지에 사는 부평사람들은 1960~70년대에 저기압 흐린날씨에 서풍이 불면 미군 빵공장에서 풍겨나오는 빵내음이 온 마을에 퍼진다. 아침부터 주민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집에서는 밀가루 쑥개떡이나 김치부침게를 앞다투어 해 먹는다. 빵공장앞에는 전국 각 Camp 기지별로 빵을 미군부대에 공급하기 위해 수많은 콘테이너 차량이 줄을 서는 광경이 전개된다.(사진) 이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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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5] 부평지형은 분지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山과 江ㆍ川으로 지역 경계를 나누던 시절부터 부평은 계양산 남쪽 산록에 취락이 형성되고 둥근 고리 모양의 분지로 한남정맥으로 둘러 쌓인 10~20m의 저지대였다. 부평분지는 화산 칼데라의 환상구조로 남북으로 12km, 동서로 9km 정도의 큰 타원형에 부평이 형성되었다. 빨간 화살표는 부평지역의 고개(峴)로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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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3] 부평은 물의 나라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 부평은 장마철 상습 수해지구였다. 한강 수위보다 낮은 굴포천이 있어 1925년 이전에는 서해의 조수가 밀려 들어 오곤했다. 평소에는 대부분이 건천(乾川) 이었다. 1925년 한강유역에 제방을 설치하고 부평수리조합을 결성한다. 일제의 산미증산정책의 일환으로 부평은 농경지가 조성된다. 1930년대말 부평에 조병창이 들어오며 부평1동 굴포천 구간은 변화가 찾아 온다. 1930년 이전, 예전의 굴포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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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2] 삼릉(三菱)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편문화원 이사) 삼릉은 미쓰비시제강공장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살던 곳입니다. 당시 주거시설마저도 조선인(10ㆍ6ㆍ4호 장택)과 일본인에게는 (단독ㆍ2호)차별을 두었습니다. 1940년 4월 1일, 부평이 인천부에 편입되고 부평조병창 확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시공하게 되었다. 이 때 일본군은 일본인 토건업자 다다구미(多田組)ㆍ시미즈구미(淸水組)ㆍ다마보구미(玉操組)ㆍ간또오구미(關東組)ㆍ하자마구미(狹間組) 등 5개 업체에게 5개 공구로 나누어 하도급 공사를 시행하였다. 이에 필요한 인력은 ‘국가총동원령’을 공포하여 조선인들을 근로보국대란 명칭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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