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平 文化 이야기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5]  부평에는 유난히 고아원이 많았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에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전쟁도 그렇지만… 우리는 150여년 전, 제국주의 습성에 의한 침략을 당했고… 그 나비효과로 인해 70여년 전,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그 때의 상황이 사진 속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그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배고품과 두려움, 엄마의 품속 그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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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3] 신트리

박명식 이사 신트리(新基里)=지금의 ‘신도시’이다. 일제강점기 1939년을 전후로 부평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적산공장 및 배후 주거지역이 된다. 1941년 부평은 (=昭和町으로 町名) 소화토지구획정리지구, 1941년5월5일 인천일본육군조병창 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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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2] 大井里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대정리(大井里)는 조선시대 말기에 불리던 부평동의 옛이름이다. 마을 주민들이 쓰던 큰우물(대동우물)이 있었으나, 1930년대 조병창이 들어오며 부평역과 광장을 확장하며 上洞마을과 큰우물은 사라지고 下村마을 만 남는다. 소방소 옆에 신용동(新龍洞)이라는 동네가 들어서고 부평연합병원(세림병원 전신)옆에 다시 우물을 팠으나 이마저도 도시가 확장되며 1980년대에 없어진다. 1883년 이후, 개항장 인천이 날로 발전하자, 이것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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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1] 굴째미와 新宮洞을 아시나요?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1897~98년 경인선 공사時 부개-송내역 인근과 동암-주안역 인근은 저지대로 철길을 놓기 위해선 철둑이 필요했다. 그래서 흙을 채취한 곳이 ‘굴째미’이다. 만월산 터널이 있는 곳이 부개산으로 산줄기가 부평굴다리 까지 흘러내려 온다. 낮은 야산을 이용해 흙을 채취한 곳에 평지가 생기고 이곳에 ‘굴째미’ 마을이 생겼다. 1942~1945년 부평선 철둑에 필요한 흙을 채취한 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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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0] 인천소화고등여학교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인천소화고등여학교 (박문여자고등학교 전신)… 1940년5월18일, 민족 자본가 석계 장석우에 의해 송림국민학교 건물을 빌린 4년제 8학급의 소화고등 여학교로 개교.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여성이 배워야 한다.’ 는 열정을 가진 분 이었으나 그러나 학교 설립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교는 조병창이 있는 부평으로 하고, 학생수를 한국인과 일본인 반반으로 할 것, 이사장은 인천부윤 (시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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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9] 부평역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역의 변화… 1899년9월18일, 노량진과 인천역 (33.2km, 1시간40분)을 낮은 산록과 산록으로 이어주는 경인철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되었다. 개통역에는 부평역이 있었다. 허허벌판 富平郡 同所井面 大井里 있어 한 때는 ‘동수재이 정거장’이라 불렀다.(부평역의 개통으로 부평 일대는 일찍이 토지집적 대상으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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