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캠프마켓을 제55부대 또는 뎃보(Depot)라 불렀다. 1945년 9월 8일, 38선 이남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인천항 상륙한 미군은 부평에 위치한 인천일본육군조병창 자리(115여만 평)에 1945년 9월 16일 주둔한다. 그리고 조병창 인근의 적산공장들까지 미군기지로 흡수하여애스컴시티(ASCOM City-Army Support Command City, 약 200여만 평 추정?)의 군수기지로 재편한다.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20] 富平路의 변화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조선중기 ‘부평읍지'(1698년)에 나오는 고지도에 부평에는 8개의 도로가 있을 만큼 교통의 요지였다. 6大路(약 16.8m)ㆍ1中路(약 4.8m)ㆍ1小路(약 3.3m)가 있었다. 부평대로와 계양대로의 원형이었던 富內路는 소로(小路)였다. 1.김포로, 2.강도로, 3.양화진로, 4.안산로 5.舊경인로, 6.영종로 7.석곶로, 8.부내로 부평대로는 1940년도 인천일본육군조병창과 적산공장들이 들어서며 2차선 비포장도로가 만들어진다. 지금의 모습과 비슷하게는 1970년대에 완성된다. 부평의 옛 사진을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9] 화교학교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에는 화교학교가 있었다. 1951년 전쟁의 와중에도 배우고자 하는 일념으로 학교를 세웠다. 1946년 주안분교, 1951년 부평분교, 용현분교가 설립되었으며 3학년 과정을 마치고 4학년부터는 인천 북성동 중산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통학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부평은 복화루를 비록하여 많은 화교들이 참여하였다. 지금은 학생이 줄어들어 1986년 폐교되었다. 부평의 옛 사진을 통해과거의 생활상을 엿보고 현재를 가늠해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8] 부평대로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70년초까지 부평대로와 계양대로는 완성되지 않아 갈산천 제방을 이용하여 계양구나 김포를 다녔다.” 첫번째 사진은 1917년 부평지역 수계를 보여준다. 빨간실선이 경인로와 김포로(小路)이다. 두번째 사진은 수도배수간선로도(1942)이다. 컬러 사진은 소화토지구획정리지구內의 신작로(=부평로) 부평역에서 산곡입구삼거리까지 비포장도로를 조성.(1948.10. Norb-Faye 촬영) 1940년을 전후하여 부평은 도시화가 시작된다. 그 시작은 일본의 전쟁을 위한 군수공장에서 또는 근로자 사택에서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7] 제2비행장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의 옛 사진을 통해 과거의 생활상을 엿보고 현재를 가늠해 봅니다. 향토사학자 박명식 선생의 명쾌한 해설로 주 5회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6] 錦馬山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산의 형국이 비단결 같은 말 잔등 같아 생긴 이름에서 유래’ 되었고, 근래에 부개산 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철마산은 일제시대 지명이다.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5] 부평에는 유난히 고아원이 많았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에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전쟁도 그렇지만… 우리는 150여년 전, 제국주의 습성에 의한 침략을 당했고… 그 나비효과로 인해 70여년 전,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그 때의 상황이 사진 속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그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배고품과 두려움, 엄마의 품속 그리움이…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4] 경인선 굴다리와 철길건널목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1899년 개통된 경인철도는 산 능선을 연결하여 철길을 놓았지만 산과 산 사이 저지대는 흙을 토취 (土取)하여 철둑으로 연결했다. 대부분이 물길로 굴다리가 만들어 지고 통행로가 됐다. ※ 제1ㆍ2 공구 중심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3] 신트리
박명식 이사 신트리(新基里)=지금의 ‘신도시’이다. 일제강점기 1939년을 전후로 부평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적산공장 및 배후 주거지역이 된다. 1941년 부평은 (=昭和町으로 町名) 소화토지구획정리지구, 1941년5월5일 인천일본육군조병창 개창.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12] 大井里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 대정리(大井里)는 조선시대 말기에 불리던 부평동의 옛이름이다. 마을 주민들이 쓰던 큰우물(대동우물)이 있었으나, 1930년대 조병창이 들어오며 부평역과 광장을 확장하며 上洞마을과 큰우물은 사라지고 下村마을 만 남는다. 소방소 옆에 신용동(新龍洞)이라는 동네가 들어서고 부평연합병원(세림병원 전신)옆에 다시 우물을 팠으나 이마저도 도시가 확장되며 1980년대에 없어진다. 1883년 이후, 개항장 인천이 날로 발전하자, 이것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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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