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2015년 부평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음악ㆍ융합도시로 선정되고 2021년 문화도시 부평이 되었다. 1960~70년대 부평은 수많은 뮤지션들의 성지였다. AFKN 미국 방송을 듣고 다음날이면 뮤지션들이 직접 악보를 그려 연주할 정도의 실력있는 음악인들이었다. 그래도 실력에 따라 플로어ㆍ하우스ㆍ오픈 밴드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미8군 무대에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은 당대를 풍미했다. 주한미공보원USIS에서 분기별로 오디션을 보고 실력을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4] 굴포천 환경정화는 우리가 자원봉사하여 깨끗이 해서 후손들에게 남겨주겠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굴포천ㆍ청천천ㆍ산곡천ㆍ항동천ㆍ부개천 등에서… 졸졸졸 물 흐르는 곳… 1920년대 고유섭의 ‘경인팔경’ 詩에 나오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부평이었다. 예전에 ‘물의 나라였다.’ 굴포천에서 농사짓고 여름엔 물장구치고 물고기와 같이 놀던 곳, 잠자리 잡고 메뚜기 잡던 곳, 겨울엔 썰매 타던 곳…用水ㆍ樂水ㆍ益水로서 부평사람들의 친수공간이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냄새나고 더럽다고 복개하여 죽은 하천이 되었고, 수많은 노력끝에 40~50년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3] 같은 장소ㆍ다른 시간, 신촌로의 변화
빅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新村에 마을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7년 부평공원에 홍중공장 (히로나까상공)이 들어오면서부터 일것이다. 193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공업화 정책이 광업에도 일본 대자본이 활발히 전개된다. 광산붐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부평공원 자리에 광산용 기계와 화차를 생산하는 홍중공장이 들어선다. (1911년 말 796개 광구가 1937년에는 6,513개로 증가) 광복이 되고 애스컴시티가 들어오면서부터 1950년대에는 미군클럽이 애스컴시티 인근에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2] 지하호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어릴적엔 ‘새우젓토굴’ 이라 불러왔다. 친구들과 놀이터로서 역활을 했을 뿐이고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도쿄육군제1조병창ㆍ부평조병창의 실포내지는 소총 제조공장 이설(옮겨 설치함)하기 위해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조선인 학생들을 동원하여(通年動員) 만든 곳이다. 많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지하호ㆍ지하시설은 함봉산 일대 27곳, 캠프마켓 일대 10곳, 일신동 평양제2제조소 일대와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1] 1962년경 지도로 본 부평2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부평대로는 1970년에 완성되고, 이전에는 갈산천 제방을 이용하여 계양구ㆍ김포로 갔다. 수도사가리(水道四街里):인천부평동초등학교 옆에 수도가압펌프장이 있었다. 1910년 노량진 취수장에서 수도국산 송현배수지까지 500mm 수도관이 지나가는 수도국선이다. 이때 수도선을 관리하기 위해 폭이 약 4m정도 길이 생긴다. 부평로와 수도국선의 사거리가 생겨 ‘수도사거리’라 불렀다. 신부동(新富洞):중앙신협에서 부흥시장 (깡시장) 북쪽으로 예배당이 세워지고 마을이 형성되니 예배당촌으로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40] 1962년경 지도로 본 부평1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62년 부평출장소 시절, 부평동이 부평1동ㆍ부평2동ㆍ부평3동으로 분동 된다. 부평4공단도 없었고, 부평대로도 없었다. 경인고속도로도 없었다. (1942년 건설된 국방로-영인로의 비포장도로만 있었다.) 대한제국 말에 馬場面 山谷里(=뫼끝말) 이었으나 1940년 4월 1일 인천부에 2차 편입이되며 白馬町 – 하쿠바쬬로 개칭되고 광복이 되면서 町이 場으로 변음되어 ‘백마장’이라 잘못 불려지게 된다. 청천동을 마제이(馬場)라 부르고 마장면사무소가 있었다.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9] 가좌동 장고개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57년도 Morton의 시리즈中 사진 한 장이다. 당시에는 칼러 사진이 흔하지 않을 때이고 서구의 김영덕 선배가 정확히 사진을 읽어 주셨네요! 지도에 사진 찍은 표시를 어느 정도 추정 할 수 있어 표시 해 놓았고요. 이 길은 서구쪽 가좌동 장고개(파란 표시) 입니다. 즉 군사用으로 자주 쓰였으며 부평쪽으로 장고개를 넘으면 지금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 주는 남자 38] 나는 ‘꼰대’다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반환되는 부평의 캠프마켓은 忠正公 민영환의 땅이었다. 민영환의 식객이었던 친일파 정미칠적의 한 명인 송병준이 강탈하고 이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100년간 이루어진다. 송병준의 후손들이 ‘조상 땅 찾기’에 제기된 소송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2005)” 에 의해 거의 패소하거나 기각된다. 을사늑약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친일파들은 일본으로 부터 은사공채와 자작(子爵) …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7] 부평의 노포 2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40~50년 이상을 부평시장과 함께 한 노포들… 짐자전거 한 대, 나무 사과 박스 2~3개와 그리고 몸이 사업 밑천이었죠! 시장 골목진 곳에 좌판을 깔고 50~70여 년 넘게, 더위와 추위속에서 부평사람들과 함께 부평시장을 지켜왔고 부평을 만든 곳입니다.
Read More »[사진으로 부평을 읽어주는 남자 36] 29년 만에 완료된 소화토지 구획정리 사업
박명식 향토사학자(부평문화원 이사) 1941년 10월 28일 조선총독부가 인천부 ‘소화토지구획정리사업 실시계획’을 승인 하면서 부평역 앞 42만 7,000평에 대한 1단계 구획정리가 시작되어 1943년까지 공사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인력 및 자재 부족으로 공사는 늦어지며 광복을 맞이하고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등에 밀려 29년이 지난 1970년에야 1단계 토지구획정리가 완료되었다. ※부평 조병창은 1941년 5월 5일 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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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위클리 THE BUPYEONG WEEKLY